2. 구경 당하는 존재
입시 중심이라 예체능은 형식적으로 편성되어 있다. 대신에 그 시간은 자율 학습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그래도 미술 선생은 자기 일에는 꽤나 자부심을 가진 듯하다. 시 미술협회 간사일 만큼 활동적이기도 하다. 그의 시간이 되면 그는 가끔씩 회화의 매력을 들려주곤 한다. 그럴 때면 그의 눈은 열정적으로 반짝인다. 시대 상황이 예체능 과목을 이단시하며 경계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밥 굶기 딱 알맞은 종목에다가, 산업시대에 투입될 노동력이 마치 생산성없이 빈둥대는 것처럼 여겨져 유한 계급으로 낙인되고 있다. 보다는, 기성의 잘 짜인 그물망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물고기는 그물 밖으로 빠져 나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것이다. 이들은 분류상 더 어리석은 물고기류이지만, 바깥에서 그물을 찢으려는 어떤 몸짓을 할 지도 모르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최대한 시대의 반역자인 것처럼 몰아가 산업사회에 도움이 안되는 바깥의 존재로 내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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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활동 시간을 맞았다. 그 시간도 마찬가지이지만 오늘은 바깥 활동이다. 합동 전시회가 있어 관객으로 동원되는 것이다. 어쨌든 우린 학교 밖이 좋다. 입구에서는 선생이 손님맞이로 연신 허리를 굽힌다.
“선생님 축하드려요!.”
“어, 너희들 왔네. 그래, 그림 한 장 보는 것도 좋으니 천천히 감상!”
전시장엔 작품이 빼곡하다. 한쪽엔 내부 조명이 설치된 조형물도 보인다. 우린 호기심으로 들여다봤다. 3면에 거울이 있다. 좌우 거울은 서로를 비춰 우리를 무한히 반영한다.
“어! 선생님 이게 뭐죠?”
“그건 거울이 서로를 비추면서 대상이 반복되는 무한 거울이라는 거야.”
“신기하네요. 하나뿐인 전등인 데 끝도 없는 것 같아요.”
“응, 그렇지. 그런데 그런 피상적 현상 말고 무얼 느끼지!”
우리는 그게 뭔지 궁금해졌다.
“우리는 나와 마주하는 것을‘대상, 객체’라고 하잖아? 쳐다보는‘나’는‘주체’라고 하고.”
“우리는 광각작용을 빌려‘나’라는 시각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지.”
“그런데 나는 앞을 보지만, 양쪽 거울은 무한히 나를 비추고, 그 무수한‘나’가 또 나를 바라보고 있단 말이지. 그럼,‘나’는 주체일까, 아니면 대상일까?”
머리 아픈 질문이다. 분명 무수한‘나’가 바라보는‘나’를 엿보고 있으니, 도대체‘나’가 뭔지를 모르겠다.
“선생님, 그래도 내가 정면을 보고 있음을 알고, 무한 거울 속 나를 내가 또한 지각하니, 어차피‘나’로 집중되는 거잖아요?”
“그래? 그럼 맹인이라고 가정해 봐!. 무한 거울 속 나를 모를 때에도, 그러니까 안 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고‘나’가 오롯이 주체일까?”“관계 맺는 것이 없음에도 말이야?”
“관계라서 그렇지, 사물은 그 자체 존재하잖아요? 무엇이라 하기 전 그것은 이미 있잖아요? 단지 사람이 대상이니 뭐니 하는 것뿐이지….”
“맞아, ‘나’가 주체니 하는 것도 그럴 뿐이지, 관계라는 것이 끊어지면 뭐라 할지 모르겠지?
무한 거울은 이런 것이야.‘나’로서 세계를 대하지만, 무한 거울은 세계를 쳐다보는 나를 바라보지. 그것은 결국 주관일 뿐이지. 진정한 세계를 보려면, 무한 거울 속 객체가 보는 나를 쳐다봐야 할 거야!”
“선생님, 너무 어려워요.”
“그래 간단히 말하면, 우리도 사물이 되어 봐야 한다는 거야!”
교실에는 거울이 하나 있다. 그것은 몸가짐보다는, 딴짓하는 녀석들을 엿보는 역할이 더 큰 것이다. 이를 통해 교사는 학생의 행동을 엿보는 것이다. 그런데 교사는 수업 주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지식을 전시하는 대상, 객체이다. 학생들은 그를 구경한다. 애들은 자기들이 주체라고 여긴다. 그러나 교사는 재빨리 거울로 반전시켜 구경꾼들을 구경한다. 거울은 이 모두를 구경하는 구경꾼을 구경하는, 제3자이다. 하지만 거울은 자신을 무엇이라 일컫지는 않는다. 참 미묘하다. 백경은 자기 회귀의 저항이었을까?
선생은 거울을 통해 백경의 작은 동작을 포착했을 것이다. 그는 이 움직임과 목소리를 조합, 반항이라는 징후를 읽었을 것이다.
“백경, 네가 굳이 그러지 않아도 언젠가 콘테는 소영웅주의를 깨달을 것 아냐?”
“그럴까? 그런데 우리가 구경꾼 노릇을 벗어나면, 이번엔 누가 구경꾼일까?”
각자가 주체라지만, 사실은 서로가 객체이면서 구경꾼 아닐까?”
그러면서 백경은 예전에 보았던 회화 이야기를 꺼냈다.
“언젠가 난파선 그림을 본 적이 있어. 허우적대는 사람들, 운 좋은 구명보트 선승자, 선미에서 최후를 맞는 모습…….”
“갤러리들이 그걸 감상하고 있었어. 생사의 경계를 표현했다는 관람객, 슬픈 표정인 사람, 무표정하게 질감만 관찰하는 사람들….”
“옆에서 그들을 쳐다봤지. 마치 무한 거울이 구경꾼들을 구경하는 것처럼.”
“그랬더니 이 모든 것들이 교차하는 것이었어. 그림이 대상이고 관객은 주인 같지만, 내가 본 관객은 모두 객체라는 거지. 나를 보는 시선이 있다면 나 또한 대상인 것이고.”
나는 그에게 내 생각을 직관적으로 잘라 말했다.
“끝내 주인은 없고 대상만 남는다. 이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