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성2 믿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1. 믿음과 믿고 싶음믿음과 믿고 싶은 것의 치이는 뭘까?대상을 향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지만 믿음은 선험적이며 본질적이라는 뉘앙스가 있는 반면, 믿고 싶은 것은 후험적이며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어떤 것이든 절대적 신념을 갖는다는 게 놀라운 현상이긴 하다. 세상엔 믿을 게 아무것도 없어 자신조차도 부정하는 마당에 말이다. 요즘은 '어디 마음 둘 데가 없어 '믿고 싶은 것을 하나쯤은 내세우고 싶어 한다. 그것이 물신화를 초래하는 전근대적 사고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근대성조차도 사실은, 인간에 의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신화가 아닌가?그래서 신화는 끝내 우리를 떠나가지 못하고 유령처럼 배회한다. 이 환상이 현실속으로 침투하면, 그것은 세계가 되기도 한다. 인.. 2024. 5. 20. 죽고 사는 것이 무엇이라고요? 1. 두 번의 주연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 순간에 단 두 번, 세상의 주연이 된다. 물론 그중에는, 전체 생을 통해 단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하는 삶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허무주의적 시각을 들이 밀면, 삶을 꾸려가는 중간에 받는 주변의 관심은 단절을 막고자 하는 몸짓에 불과하며 부러지기 쉬운 연약한 것으로 금방 사라지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받는 것으로부터 탄생이 주던 이목과 기대를 연속하고자 하는 제스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 본래적 삶인가?' 하는 것은 여전히 의문스러운 것이지만, 암튼 이 연장선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쉼 없이 상징계에 이미지를 덧붙이는 지난한 움직임을 계속한다. 누구든 죽음이라는 무를 향해 의식적으로 달려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그것은 '허무' 그 자체가 된다. 하.. 2024. 4. 1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