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거울 때는 무슨 말이든 잘 들리지 않는다.
제대로 말하자면 어떤 이야기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말을 하는 게 무의식적 행위이니 특별한 사정이 아니면 듣는 것도 비슷한 심적 상화미긴 할 것이다. 암튼 내적 심리가 혼란스러우면 주의는 온통 마음의 돌덩어리 무게에 짓눌러 수직으로만 작동한다. 마음의 눈으로 불리는 눈길도 발꿈치만 쳐다보게 된다. 모든 것이 땅바닥으로만 향하고 수평 방향으로는 시선이 가질 않는다. 아니, 더 자세히 살피면 아예 초점이 없다. 다만 걸려오는 말에는 사나운 반응만 오히려 의식적으로 준비되어 있다. 무관심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관심이 따라붙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거칠게 대응하는 것이다. 이는 '그냥 내 버려둬'하는 것이 무너져 내린 것에 대한 거부감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다고 아무 관심도 없단 말인가?'라는 이중의 심리가 잠복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건드려도, 그러지 않아도 터져 나올 이 격한 반응!
세상 일중에 이런 다의적 태도가 은폐되어 있지 않은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성별로 붙여진 편견적 성격을 그대로 가져간다면, 누구든 양성 각자의 전형적 성향을 부분적으로 가지지 않은 존재가 있겠는가?
그래서 사회적으로 지칭되는 성별속에는 마주 보는 성별의 태도가 함께 묻어 있는 것이다.
"뭔 남자가 찌질하게 징징거리고 야단이냐?"
"무슨 여자가 저리도 사나워?"
본질이란 게 있다면 시실 이런 구별은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는 일정 기간 전에는 남자일지 여자일지 구별이 되지 않는 때가 있다.
그런 생성은 생명체이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현상일 것이다. 그러니 누구든 양향적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급진주의적 견해에서는 성별이 사회적 수행성으로 고려 되는 것이지 자연적 구별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고도 한다.
암튼 사람에게는 비단 심리적 태도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다층적 현상을 보인다.
호기심에 자신의 운명을 가늠해 보느라 점을 보면, 그 결과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통하는 결과가 있다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속으론 한없이 무딘 성격이군요!"
이런 이중적 성격은 거의 모든 이가 공감하는 바이다. 단 그것이 정도를 넘어 정신적 병리현상으로 발현되는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다.
그래서 무거운 마음이면 어떤 것을 계기삼아 가볍게 할 구실을 찾는 일도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이런 상태를 자각하면서도 계속 마음이 편치 않으니 당분간 눈을 들어 보는 게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곧 파열을 일으켜 저 바닥 아래로 가라앉히는 때가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