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다는 흔적도 제대로 없다가 겨울은 순식간에 제 땅을 점령했다. 어떤 요란한 개선 행진곡을 울리면서 나타난 건 아니지만, 계절이 바뀌었음을 각인시키는 현상은 곳곳에 있다. 실내에 있어도 발이 시리다. 짧은 옷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따뜻한것이 몸을 당기는 시간이다. 세상은 이처럼 시기에 맞는 사물의 연대가 나타난다. 추운 겨울은 새 봄을 위한 대기 공간으로 여기면 이 지루한 시간을 망각하고 지낼 거리가 동원된다. 썰매를 지치든 눈싸움을 하든....
그렇게 계절마다에는 나름의 의식이 뒤따른다. 그 겨울은 그래서 추위만큼이나 허전해지는 마음을 잊기 위한 행사가 있다. 한 해가 간다는 것은 허전함과 희망이 겹치는 이중성이다. 서운함이 클수록 희망도 더 확대될 것이다. 이루지 못하거나 도달하지 못한 것은 더 큰 끌어당김으로 다가온다.
아직 한달여가 더 남은 시기이지만, 어쩐지 벌써 한 해의 끝에 다다른 느낌이다. 별 것 아니지만, 올해 가능한 것을대충 다 흘려보내고 나니 빈 껍질만 남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그런 걸까?
아니다.
다시 눈을 들어보니 지금부터 또 나름 후다닥 거려야 할 시간이다. 제정신을 가다듬어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