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900하고도 60년대 말, 동네 아이들이 모여든다. 간밤에 비가 내린 후 땅바닥이 물러, 고철 못을 수집하기 좋다. 동네 노는 형(?) 지휘
아래 코를 처박고는 녹슨 못을 줍는다.
“1킬로니까, 10원!
땀 흘린 노동의 대가는, 즉각적이지만 불공정하게 분배된다.
”너 1원, 너도 1원, 나는 8원“
동네 형이 어딘가로 사라진 후, 우리는 철둑길을 향한다. 얇게 부풀린 뻥튀기 수레가 기다리는 곳. 우리는 그중 크게 보이는 뻥튀기 한 장씩을 집어 든다. 침에 묻으면 녹아내릴 게 뻔한 이 주전부리를, 그래도 또 한 번 부풀려 먹느라 이리저리 혓바닥으로 부피를 늘려 본다. 마주 보는 쪽에 있는 영화관, 혹은 우리가 ‘창고’라고 부르는 곳에서는 3본 동시 상영이 진행되고 있다. 옆 출입구 틈새로 혹 화면이 보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살짝 틈을 벌려 본다. 어떤 망할 놈이 새어 들어오는 빛을 감지했을까?
극장 안에서 피우던 담배 끝을 그 사이로 디민다.
”개xx“! 눈동자를 지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관심사를 철길로 돌린다. 배수를 위해 돋운 철길 둑, 그 옆으로는 색싯집이 평행한다. 간밤의 질펀한 영업을 마친 오후, 색시들이 향하는 목욕탕.
“색시들이 많이 이용해서, 병이라도 옮을까 봐 어디 찜찜해서 가겠나?”
동네 아주머니들 우려와 멸시가 쑥덕인 뒤로, 아이들이 달려간다. 곧 선적할 화물이랑, 군용 탱크를 실은 화물 열차가 힘겹게 부두를 향하면, 무리 중의 우두머리는 일제히 명령을 내린다.
“못 깔아!”
하루에 몇 차례 지나가는 화물 기차를 영접할 시간이다. 덜커덕거리며 철 궤를 달려오는 박자에 맞춰, 각자가 준비한 못이 철로 위에 드러눕는다.
‘서컹!’
철 궤 위에 깔린 못들은 이내 신음을 토한다.
어찌 알았을까?
못은 자석이 되어 쇳가루를 끌어당긴다.
철길 관리인이 없는 통과 구간.
대합실이 있는 곳도, 잠시 정차하는 곳도 아닌 데, 색싯집은 빼곡하다. 6.25 전후사가 여기에 진열된 듯…….
2.
한 녀석은 뙤약볕에 노출된 채, 이 화물 운반차의 종점이 궁금해졌다.
“아마 바다가 나올 거야. 아버지가 그러는 데, 배에 싣고 바다로 나간다고 그랬거든!”
만류하는 친구들 뒤로, 그는 영웅처럼 기차에 뛰어올랐다. 또래의 함성을 타고, 어딘지도 모를 곳을 매달린 채 기차에서 뛰어내리지도 않고 점령군처럼 손을 흔들었다.
“저러다 길 잃어 집 못 찾아오면 어쩌려고?”
용감하지 못한 변명 뒤로 잠시의 걱정은 녹아내리고, 아이들은 자석 놀이로 모래를 휘저으며 성과물을 자랑해 댄다. 누가 쇳가루를 더 많이 모으느냐가 권력의 상징이다. 진지한 탐험 자들로 가득한 시간, 엄마가 지난다.
“아무개 못 봤어?”
닭이 울 때 세 번 부인한 베드로처럼, 그들은 방조범이 아니라는 듯, 짐칸에 매달려 떠난 나는 자취를 삭제당했다.
동네가 뒤집히는 저녁, “너희들 아무개랑 철길에 같이 갔었잖아!”
“말하지 않으면 굿을 할 거야. 그러면 너희들 입이 돌아가고 손이 오그라들 거야”
겁에 질린 아이들의 흐느낌과, ”말하면 장난감 사 주마“는 꼬드김.
”우린 그만 가고 내리라고 외쳤어요.“
3. 적당한 장소를 놓친 나는 괜히 두려워졌고, 간신히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여기가 어딜까?“
혼자 만용을 부렸지만, 알지 못할 곳의 낯섦.
괜히 잘난 척하다가 길을 잃었다. 햇빛은 바늘처럼 따갑지만, 불현듯 하늘은 잿빛이다. 두려움과 당황함으로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달린다. 눈물,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기름 막으로 떡칠한 부둣가와 나란한 철길.
바다 표면 위로는, 그래도 무언가를 노리는 갈매기가 날고 있다.
”동네에선 못 본 새인데….“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갈팡질팡하던 순간, 마침 부두 노동자인 듯한 아저씨 두 사람이 길을 지나고 있다.
”아저씨, 우리 집 어디로 가면 돼요?“
”야! 네가 누군지도 모르는 데, 너희 집은 어떻게 알아?“
”흙색 문짝에 유리창이 있는 집인데요.“
”이런 웃기는 놈을 봤나?“ ”동네 이름은 뭐고?“
”모르겠어요. “
”그럼 나도 몰라. 그렇지만 저쪽으로 가봐“
더욱 겁이 난 발걸음은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철길을, 또다시 눈물범벅으로 달린다.
‘색시 아줌마 집이 보일 텐데….’
‘엄마가 늦게까지 집에 안 들어온다고 난리 났을 텐데….’
다시금 두려움의 눈물이 흐른다.
4.
무턱대고 달리고 달린 길, 철길 끝에 딸린 재래시장이 보인다. 여기면 여전히 시커먼 기름 막이 둥둥 떠다니는 시장통 철도 교량 갱목 부근. 친구들에 이끌려 장난감 선글라스를 몰래 훔쳤다 엄마에게 야단맞은 곳, 낮에 헌 철 못을 주워다 판 고물상도 보인다.
”살았다!“
이제야 철 궤에 걸려 넘어져 까진 무릎이 시리다. 혼날 일은 다시금 고난을 불러오겠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미처 알지 못하던 배가 고파 온다.
자신이 생긴 나는, 철도 위를 두 팔 벌려 평행을 유지하면서, 한 번은 뒤뚱거리며 집으로 향한다. 영웅은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의기양양한 발걸음은 자꾸만 철길 위에서 공중 제비를 놀 듯 장난스럽다.
내 몫의 자석 못도 어느 녀석인가는 챙겨 놓았겠지…….
5.
다 키운 애 잃어버렸다고, 애는 안 보고 뭘했냐고!
소동이, 그런 소동이 벌어진 시간, ‘엄마’하는 소리가 목구멍을 삼킨다.
”이놈의…. 이 웬수 덩어리야! 도대체 어딜 갔더라는 거야?“
”어디 떨어져 죽은 줄 알았잖아!“
사정없이 날아오는 엄마의 등짝 후려치기.
맞을 짓을 했건만, 반갑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다.
”냅 둬! 길 안 잃어버리고 집 찾아 왔으니 다행이지“
”길 가는 데 아저씨 두 명이 보였어. 그래서 아저씨에게 우리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저쪽으로 가라 그러더라. 그래서 막 달렸더니, 시장 철길이 있고, 장난감 가게도 보이고!“
뒤늦게 헛웃음 짓는 부모님 그림자 아래로, 무거운 졸음이 내려앉는다.
”녀석, 제 딴에는 정말 식겁했군!“
”다시는 철둑길에 안 나가겠지!“
아늑한 중얼거림과 함께, 긴 하루가 잠든다. 철둑 가는 서기 1900하고도 60 끝의 아련한 추억이다. 지금 그 동네는 금융 도시, 그 높고도 웅장함에 서사가 묻힌 향수이지만.
그것은 어린 시절 추억을 안고, 그 깊이 만큼의 높이로 변한 듯하다. 그렇게 어린 시절 철길은 길을 잃게 했지만, 동시에 길을 찾게도 해준 것이다. 지금은 철거되어 어디로 운반되었을까?
철길이 지나던 옛길을 찾아, 다시 그 화물칸에 올라, 철 궤를 싣고 사라졌을 부둣가를 따라가고 싶어진다.
‘이제는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