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디로 투족할 지 미정. 늦은 아침이 승차하는 버스. 수소 차 2002번! 검은 매연 내뿜던 산업시대, 이제 20하고도 1세기는 청정의 시대이다. 그런 기표와 갓 취임한 단체장 허 씨. 청렴한 시정 철학 내걸고는, 내내 평행할 노선인 듯 흠흠 헛기침. 아무렴 어때! 요금 단말기엔 신용카드가 페티시. 몇 푼의 압류와 ‘삑’소리의 기계음, 겸연한 공간의 시선을 내어 준다. 뒤편 한 곳 간신히 구긴 몸. 목적지는 없지만, 길게 목 뺀 이정표. 상념에 잠겨 들 때쯤 나이 든 아줌씨들, 간밤 넋두리에 공기는 파열. 정거장마다 웃음이 정차하고, 소리통은 팝송을 응얼거린다.
“다음은 인천 xxx 동의 zzz님 신청곡, ‘2002’singing at the top of both our lungs!”
온 폐부로 외친 함성. 골문을 찢는 410g 구체, 그 속으로 지구는 빨려들었다. 내 아들은 헹가래로 공중을 부양했고, 구르는 차바퀴와 둥근 것의 기묘한 닮음, 길이 12m 버스 안의 노래는 잊힌 그 날을 소환하고 있다.
2. 경북 문경 어느 농촌. 아버지의 찢어진 살림, 3남 1녀 중 차남으로, 6.25 전쟁통은 무엇? 굶주림은 매일의 전쟁이며 고프기만 하던 밥그릇. 전쟁은 실제지만, 동족상잔은 안방의 일상사. 어느
날인가 아버지의 어머니, 그러니까 할머니, “##야, 너는 00네, @는 **네!” 거기선 먹을 것도, 입을 것도….”줄이는 식솔, 자식 엮은 생존 전략은 이미 여기도 있었다. 머슴살이 내 보낸 어머니의 흐느낌. 13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는 머슴 되고, 새경으로 ‘매년 쌀 몇 가마’그런 수년간 남의 집 살이로 논밭을 사고, 어머니 이야기로, 얼마나 소중한지, 길가 소똥도 걷어 넣었다. 거름이라도 될 성이면, 마음도 북돋웠을 그렇게 보석 같던 땅. 그토록 가시 같던 시절, 아버지는 부산으로 출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이혼녀, 전 남편에 버림받은 어머니, 둘은 그런 처지로 만났다.
3. 산업시대 개막이, 국가 재건 구호가 요란할 때. 아버진 재활용품 수집상. 내 기억은 짧아, 산채 같던 건넛집과, 아버지는 그저 가물. 이것도 경영이면, 그는 기교에 어눌했다. 동종업계 사람들 한몫 챙길 동안, 슬럼가에 홀로인 당신. 배운 게 도둑질이라 유사 업종만 반복했다. 당신의 유년은 가족에 내린 재현이었다. 아버지는 큰 병채 깡소주를 마셔댔다. 마시고 또 마시고, 밤만 되면 온 동네 잠 못 들게 하는, 나쁜 이웃이 되어갔다.
4. 어느 날인가 그는 손수레에 회전목마 장착하고. 마침내‘목장주 되었다’ 씁쓸한 웃음이다. 아버지가 헤집은 골목이며, 언덕길. 어린애들 태워 주곤,‘십 분에 얼마’코 묻은 땡전. 평지에선 매일의 전쟁이다. 경사 30~40도의 고 바위 동네, 새로운 산악전으로 아버지는 전선을 넓혔다.
“**아! 와서 리어카 좀 밀어! 오르막이 지옥이다.”입대 대기자였던 나, 공중전화 너머로의 지원 사격 요청을 받는다. ‘아, 젠장! 간호전문대 학생들 우르르 몰리는 곳인데…’
왠지 싫은 수신에,‘네까짓 것들 훗날 보라! 괜한 자존심은 땅바닥만 향하고, 그 위로는 가쁜 숨을 토했다. 독립은 삭제할 아버지의 오후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의 신앙은 오로지 돈. 초등 6학년 때, 축구하다 부러진 팔에. 수술비 위로 퍼붓던 술. 그럴 수도 있음이, 그럴 수 없는 아버지의 패닉이었다.
5. 부산 가는 기차. 어머니의 다급한 연락. 그토록 술주정에, 고혈압이 무너뜨린 자리 보존. 몇 년째 초점 없던 당신은. 산 송장 같은 존재로, 그렇게 술병과 함께 쓰러졌다. 홀로 될 어머니 곁에서, 마지막 이별을 고할 시간. “참 징그러…. 끝내 혼자만의 자유!”
미운 정 한 톨은 있었을까? 그렇게 세상 떠난 아버지 앞, 그런데 이 비루한 우려는 무엇?
그토록 미웠던 아버지 마지막 길. 흐르지 않을 눈물 어찌하나?
“제 아버지 가셨는데 멀뚱한 눈망울, 저런 자식 본 적 없네!” 두려웠던 그 시선 엎고, 보기 좋게 쏟아진 하염없는 눈물. 5월 초 무덥던 그 날, 아버지의 언덕길로 운구도 허덕였고, 고개의 휘어지고 오르내리는 길, 아버지의 굽은 등이 거기 있다. 세월을 지고 넘던 그 길 위로, 소처럼 힘겹게, 새우등 되어버린 굽은 등뼈. 오르고 또 올랐던 삶의 끌개. 숨 막히던 아버지의 고개, 수레를 미는 창피함이, 나도 어언 듯 아버지. 이제 나도 그 나이의 아버지.
6. 버스 닿은 한적한 묘원, 누구의 무덤일까? 이름 모를 꽃은 흐느적이고, 아버지의 손짓이 살랑이는 걸까? ‘**아!’ 하며 흔드는 여윈 세월. 한낮의 햇살에 바람이 신음하고, 고양이 한 마리의 웅크린 시선. 이젠 오직 내 것으로 내릴 시간. 애들이 내려오면, 예전 내가 살았던, 아니 부모님 동네 찾아야 할 일. 그럴 때면 아버지의 쭉 편 허리. 손자 손녀를 향한 함박 웃음일 것을. 무덤 없는 아버지. 등줄기 같은 봉토가 눈을 찌른다. ‘미안합니다. 아버지’
2002번 청정 버스에 훌쩍 올라탄 어느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