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돌아 다닐 때는 잘 몰랐지만 사정상 집에만 있으니 감금과 고립 같다. 대신에 눈으로 보는 현실 세상보다는 전자적 이미지로 보는 세계가 좁은 손바닥에서 숨 가쁘게 굴러가고 있다. 바깥은 눈에 다 담지도 못하는데 카메라 렌즈는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눈앞으로 가져온다. 사람이 볼 수 있는 한계를
기계장치가 훨씬 뛰어 넘으니 당연하기는 하다. 그런데 이미지는 눈을 뜨고 있지만 거의 무신경하게 흐른다. 시선만 향하고 있을 뿐, 어떤 내용을 읊조리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어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집중하려면 비치는 이미지 외에도 머릿속에서는 흘러나오는 설명이나 말을 따라 별도의 이미지를 그린다. 이중의 화면이 표춭되고 있는 셈이다.
바깥에 나가 직접으로 풍경을 따라갈 때는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일은 별로 없다. 집중할 것이 없는 탓도 있지만, 온 사방에는 이미지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것이 전자적 방식으로 우리 눈으로 들어올 때는
제한된 화면으로 들어온다. 내가 의도적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것 대신에 타인의 시선을 빌린 이미지가 들어온다. 그래서 영상을 통해 들어오는 갓은 머릿속에서 또 다른 이미지로 그러지는 모양이다.
직접적인 말도 그러할진데, 이미지화된 말에서는
더한 이중의 작업이 펼쳐지는 것도 이러한 연유가
아닐지 하는 의문이 든다.
누군가 카메라 앞에서 무엇이라고 말하면, 마음속에서는 그것을 재해석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그것은 구겨진 영상이다. 전자파의 지지직거리는 간섭파에 방해받는 소리인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영상의 주사선을 따라 무수한 주름이 있으니, 그것이 수시로 펴지면서 그 아래 숨겨진 말들이 솟아오른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국제평화를..."하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진실일까?'하는 의문이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이런 탓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