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가을 하면 온 세상이 붉고도 노란 물결로
출렁인다. 습기를 제거한 공기는 사람들 활동에도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살짝 햇살을 쬐면 따뜻하기까지 하다. 가을은 언제나 힘겨운 더위에 지쳐 쓰러질 몸을 다시 일으키는 청량제였다. 누가 부르지 않아도 때가 되면 들판에서, 푸른 하늘에서, 깊은 계곡을 둥둥 떠다니는 낙엽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아닌 것 같다. 여름이 길어진 만큼 가을은 짧아지거나 아예 인식을 하지도 못할 계절이 되어버렸다. 기온이 예전처럼 내려가지 않으니 나무들도 제 항상성 관리에 혼돈을 느끼는 모양이다. 지금쯤이면 추위에 얼굴을 화끈거리거나
차갑게 창백해질 시기인 데, 아직도 여름 색깔은 많이 남아 있다. 여름이 끈질겨졌다. 최후까지 멱살을 잡고 놓아주지 않다가 결국엔 겨울에게 자리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계절이 초과적이 되어버렸다. 과잉을 물려받아 이젠 겨울과 여름이 그 노릇을 하려니 더 사납게 굴 수밖에 없다.
이제 봄이나 가을같은 부드러움은 더욱 입지가 좁아지고 난폭한 계절은 더 기세를 올린다.
요즘 세상사는 것도 이와 비슷하게 닮아가는 느낌이다.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주거나, 한 해의 결실을 영그는 계절은 아주 짧은 모습만 보이고는 사라져 버린다. 은유들도 다 바뀔 처지이다. 'xx 봄'같은 말은 더 이상 '새 생명' 따위에 어울릴 말이 아닌 듯해 버렸다. '이데올로기의 종말, 역사의 종말, 사유의 종말' 하듯이 종말론이 불쑥 터져 나온다. 무엇이
완성되어 목적을 다 이룬 것에서 나온 건 결코 아니다. 결국 유토피아는 정말 '없는 곳'으로 끝나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종말이란, 완성이 아니라, 실현 불가능성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민주주의의 근원은 따질 필요 없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가 있다면, 그것조차도 종말을 맞은 게 아닐까?
대척점에 있던 이데올로기는 벌써 목숨을 잃었지만,
민주주의인들 얼마나 더 연명할까?
계절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나머지 두 개를 흡수해 버리듯, 정치적 계절도 부작용이 심해지는 듯하다. 어차피 소리밖에 없는 시민이, 말을 건넬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존재가 제 생각을 제대로 전달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수문법을 통해 일반문법을
지배하는 이상, 세상은 그런 규칙에 의해 의미가 결정될 것이다. 일반은 회복될 수 있을까?
아마도 까마득해 보인다. 더 많은 종말만이
우리 앞에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