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장 쉽고도 아려운 것
사실 가족에 대해 글을 쓰면, 가장 쉬울 줄 알았다. 항상 가까이 있으니 서로 아는 바가 수월하게 포착되고, 관심사가 무엇인 지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내다 보면,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고민이 있고, 생각하는 방향이 다름을 알게 된다. 가족이라 오히려 사실이 과장되고, 그릇되게 알고 있는 것도 많다. 기대치를 잔뜩 높이다 보니, 다른 사람의 그것에 비해 실망하는 일도 많다. 끝까지 지켜보고 지지한다는 말조차, 의심을 더 증폭 시키고 있는 일도 많을 것이다. 지난 일 같은 것도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잘못 짚은 게 튀어 나온다.
"그 떄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길래, 그런 줄 알았지"
이 뜬금없어 보이는 불일치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묵살되거나, 침묵하고 지낸 것도 꽤나 되는구나!
가족 같은 존재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아마 가족이 미처 그 영역에 들어서 있지 않을 때의 대행 역할자를 지칭하는 것일 게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침묵할 관계일 수도 있다.
2.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1차적이고도 운명적인 관계이니, 사회적 연결은 다른 역할이 개입할 수 밖에는 없다. 그것이 근본적 연대를 넘어서, 2차 관계가 효력에서 역전을 보이니, 서운할 법하다.
:그 때 엄마에게 말하지 그랬어!"
"엄마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잖아!"
알 턱이 있나?
이미 지나간 일이고, 여차저차 세월이 흘렀으니 묻을 일이다.
"거 봐! 이런 식으로 똑같이 덮을려고 하잖아!"
서로의 힘겨루기 현장은 아니다. 진화론적으로 부모 투자이론이라느니 하는 것을 들먹이는 건 더욱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다만, "내가 이런 종류에 적성이 있고, 지켜 보니 너도 비슷한 취향인 것 같아 권유한 것 뿐인 데, 내가 판단을 잘못한 것 같다."는 해명을 할 뿐이다.
그렇기도 하다.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가장 잘 안다는 오인으로, 가족이라는 무게를 강요한 것만 같다. 그런 순간이면, 제일 지척지간에 있어서 오히려 맹점이 발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3. 하얀 거짓말
오히려 적정한 거리에서 쳐다 봤으면 더 제대로 봤을 지도 모른다. 현미경으로 보는 세상은 사물의 밑바닥까지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주변의 큰 것을 보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망원경으로 보는 것은 원거리에 있는 것을 그럴지는 몰라도, 가까이 근접해 있는 것을 간과한다. 사실 원근을 골고루 반영할 수 있는 적절한 도구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함께 사는 동안에 지속적으로 조리개를 조절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당연히 아직도 알지 못하고 있다. 내가 살던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갖출 것도 많은 세상이니, 그 미지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렇지만 가족은 안다. 모르고서도 알고, 알고도 안다. 더 이상 좁힐 필요가 없어 떄로는 가까이에서, 또 떄로는 멀리에서, 서로의 조리개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 뿐이다. 부모도 그렇듯이, 자식도 거짓말쟁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응, 우리 걱정일랑 하지 마!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동료들과 즐겁게 어울리며 우울할 틈이 없으니까!"
광각 장치는 이 거짓말의 어느 쯤에서나 작동하는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