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누군가에게 그늘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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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누군가에게 그늘이 된다는 것

by canmakeit62 2024. 4. 17.

1. 삶이 펼쳐지는 곳의 그늘

우리가 사는 일상은 짙은 그늘로 가리기도 하고 타인의 그것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기도 한다. 쉐도우 복서는 정식 선수의 스파링 파트너 역할을 하면서 링 위에 오르는 꿈을 꾼다. 가진 부류와 그렇지 못한 존재에게는 공존의 그늘이 드리운다. 합법과 불법적 거래는 그림자 경제로 불린다. 이처럼 그림자는 긍정적인 면보다는 어두운 면이 더 부각되어 있다. 그러나 그림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빛이 없이는 생성될 수 없다. 빛과 그림자가 대조되는 게 아니라, 그림자 자체에서 대립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큰 존재에게는 그림자도 커, 햇살을 피하는 이에겐 많은 사람이 모이기도 하고 반대로 빛이 필요한 이에겐 큰 장애가 되기도 한다. 항상 곁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되는 사람에겐 그림자 같은 존재가 소중하다. 그것이 만들어 내는 실루엣은 몸의 기하구조를 왜곡시키기도 하지만, 관객석에서 보는 무대 위 배우들을 한층 돋보이고 몰입하게 해 준다

'그림자는 빛이 통과하지 못한 탓에 생기겠지만, 빛보다 속도가 빠를 수 있는 현상이다. [위키백과]

그늘은 그 어두운 면을 뚫고 오히려 더 밝아 보일 수 있는 무엇인 것이다.

 

2. 오히려 그늘이 빛을 내는 일

그러한 그늘이 되는 것은 우리 삶을 통해 다양하게 드러난다. 바깥세상에 안전하게 디딜 수 있도록 갖은 희생의 그림자가 되는 부모, 힘들고 지칠 때 하소연을 들어주는 친구,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자연 등

그것은 물리적인 작동 외에도 마음으로 들어와 쉼터를 형성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늘져 어두운 표정에서도 위안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를 던지는 것이다. 세상의 힘든 과정을 겪어내는 일에는 물질적, 정신적으로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에너지를 태워 우리는 날마다의 삶을 비춘다. 그러나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그것은 그 잠재력을 다하고 스러진다. 밝고 역동적인 작용은 한편으로 물러나고 거기엔 빛을 잃은 어둠, 암영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것을 되찾아야 자신을 추스를 수 있는 것에서 다시금 더한 강도를 가한다. 이 지치고 피곤한 일상이 한걸음 뒤로 물러날 때, 비로소 삶은 생기를 되찾는다. 짙은 녹음이 깔린 숲 속에 들어가, 가만히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와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되살아 나는 것이다. 그것은 빛의 세계에서 그늘을 찾고,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 자신을 두었을 때 그늘이 드러내는 '음광'인 것이다. 거기에서는 밝기의 차이일 뿐, 결국 뒤로 물러서 있는 조용한 활기인 것이다

 

 3. 그늘이 되어 맞이하기

이젠 벌써 그늘이 고마운 시기이다. 봄을 시샘해 심술궂은 비바람을 연일 쏟아내며 그가 오는 것을 계속 지체시키더니, 드디어는 햇살이 뜨겁다 못해 따갑게 쏟아진다. 집 사람은 밖에 나갈 요량이면, 피부노화에 직격탄을 두들겨 맞을 터이니 선 크림도 바르고 모자도 쓰고 나가라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늘만 좇아 다닐 테니 걱정 말라면서 그냥 집을 나선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그 말이 옳음을 확인한다. 햇살을 정면으로 얻어맞으면서 헉헉거리며 길을 걷는다. 큰 나무에서는 아직 잎이 성겨 제대로 그늘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깔깔거리며 아장거리는 어린애들의 일상이 정겹다. 이들의 보드라운 하루처럼, 우리는 그늘로서 그 곁에 있으며 돌보고 안부를 묻고, 비바람 몰아치며 햇살이 날카롭게 찔러댈 때, 그들을 맞이하는 그늘이며 안식처가 될 수 있을까?

지친 걸음을 쉴 수 있는 의자마저 햇살에 노출된 채 신음하는 때에도, 그리하여 그 자리마저 누구도 앉지 않을 때 그에 대신하는 타인의 자리가 될 수는 있을까?

그늘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그늘과 그림자로서 그들을 맞을 기꺼움 말이다. 누구나 소리 없이 사라지는 대신에 빛나기를 바라고, 타인은 나를 비춰주는 조명 역할을 하기만을 바랄 때, 스스로 그늘이 되어 그들을 맞이하기는 몹시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아내에게 야단맞으면서도 그것이 될 수만 있다면, 굳이 이 예리한 햇살을 이리저리 피할 필요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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