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런 또 속았네!
영화 같은 걸 보면, 참으로 장대한 파노라마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실제 그 스펙터클을 체험해 보면, 얼마나 그 광대함을 눈으로 포착할 수 있을까?
물론 흔히들 입에 오르내리는 장소나 설치물을 대하면, 이미지로 전달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형상에 적잖이 실망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을 과장해 사람들을 유인하는 경우엔, 그 기대치가 한 번에 땅바닥으로 내려앉는다.
"이런, 또 속았네!"
만약 우리가 영상의 바깥을 동시에 접한다면, 이런 태도에 수정이 가해 질 것이다. 가끔씩 영화를 보다가, 나는 그 장면 하나보다는 사람들이 그 순간에 어떤 표정과 반응을 하는지 슬쩍 훑어보는 게 더 재미있는 때도 많았다. 연인들끼리 로맨틱 영화를 보는 경우엔, 의식하지 않는 척하면서도 그. 그녀의 시선을 의도하는 듯한 감정 표현을 흘깃 엿볼 수 있다.
'이런 조그만 이야기에도 저런 아름다운 정서를 표출하다니!...'
영상은 바라보는 관객을 향해 각자의 연기를 꾸려 나가지만, 'the end'라는 마지막을 알리는 자막이 나올 때까지는, 영화 제작에 참여한 출연진과 스텝진의 이름에 눈길을 둔다. 그중에는, 이 영화의 완성을 향해 특별 출연한 관객들을 진짜 주연으로, 그저 '무명 씨'란 명칭으로라도 표기하지는 않았을까?
2. 나도 작품 제작에 지분이 있어요.
정작 관록 있는 비평가의 한마디,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 영화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 등의 전문가보다는 정작 작품은 관객들에게서 완성된다. 아마도 이 분야 전문가는, 걸작 그 자체보다는, 옆에 앉아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훌쩍거리는 연인을 더 의식하는 것과 같은 시선에서 비롯되는 지도 모르겠다. 작품 의도는, '가로등 불빛이 갑자기 암전을 거치면서 인생의 명암을 암시하고, 벼랑 끝 짧은 로프는 그것을 뚫는 험난한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관객들은 이 부분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그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고, 숭고미마저 느낄 것이다.'와 같은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 복선을 알아차리거나, 본래 지향하는 바와는 다른 읽기, 보기가 얼마든지 가능하므로 우리는 작품의 근원적 목적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생의 파노라마로, 삶의 스펙터클로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스토리 설정자인 우리에게 놓인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비평에 대한 비평은 당연한 것이며, 우리는 영화이든 책, 연기, 음악, 회화 할 것 없이 자유로운 프리랜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엿보기 하는 나쁜 시선이나, 곁눈질하는 눈치 보기가 아니라면, '집중해서 정면을 보세요!'에 따르기보다는, 슬쩍 옆을 쳐다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작품은 이미 여기저기서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으니까!
3. 누구나 철학자이다.
카메라는 광경의 한계를 렌즈로 포착한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하고 놓친 시선을 포착하기도 한다. cctv에 우연히 담긴 화면은, 어떤 사건 해결에 결정적 증거를 제공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보통은 상징계를 안을 뿐, 실재는 화면 밖으로 내 보내 버린다. 회화의 경우에도 그렇다. 프레임도 예술의 완성에 대한 한 부분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포착되지 않은 것은 틀 밖으로 밀어 내 버린다. 자연의 심오한 화음을 옮긴 음악도, 그 바깥의 소리는 제외한다. 모든 걸 하나의 공간에 수렴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오히려 회화도, 음악도 정작 그 외부를 듣고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말이야 쉽지 이게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그렇게 보면, 글쓰기든 예술작품이든, 그것은 불가능성이다. 우리는 재현 가능한 한도에서 사물을 우리 곁으로 불러내지만, 그것은 불가능성을 표현하는 것이고, 가능성은 그 바깥에 있는 셈이다. 그러니, 별 지식이나 전문 기교가 없는 관객이 정작 그 영화 제작자라 하더라도 그리 나무랄 일은 아닌 것이다. 이는 마치 철학이 뭐 어마어마한 건 아니며, 다만 삶 자체가 그것이라는 말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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