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속도가 생각을 뒤로한다.
글을 읽는 것이든 쓰는 것이든 모두 어려운 일이다. 한 자리에 앉아 차분히 생각을 다듬어 가면 될 텐 데, 이것은 이론에 불과하지 실질적으로는 말처럼 쉽게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양자에는 방법상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읽는 것은 다소 활동 정지가 필요한 것 같다.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읽으면 주의가 흐트러진다. 동작을 따라 이해도 흔들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 쓰는 것은 다르다. 한 곳에 머물면 상상의 한계가 있어, 생각이 따라오자 않는다. 그래서 그럴 때면 밖으로 나간다. 이동과 함께 사유가 분산될 것 같지만, 어찌 된 일인 지 나의 경우에는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여기저기 숨어 있던 낱말들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일단 한마디가 다가오면, 그것은 다른 연결고리를 찾아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더러 체험한다. 사물들이 제각각의 언어를 감춰뒀다가 써보라고 머리를 디미는 것이다. 한참을 궁리해도 신통한 문맥을 찾지 못하는 때에는 막연히 짐을 꾸려 어디로 훌쩍 떠나는 게 이런 연유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보다. 암튼, 생각은 마음속에 있는 게 아니라 사물과 풍경 속에 있다.
2. 해저를 탐험하기
그런데 습관이란 게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요즘 세대들이 긴 문장을 읽기 싫어하듯이, 주로 1,200~1,500자 정도의 문장을 작성하는 데 익숙하다 보니, 그것을 초과하는 분량에는 버겁다. 손이, 생각이 따라붙지 못한다. 물론 이것은 새로운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단문으로 끝맺음하던 것을 넘어, 보다 긴 생각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아마 그러려면, 더 먼 이동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매번 미대륙을 횡단하듯 하는 이동을 하기는 힘들다. 다시 마음의 대륙을 만들 밖에 없다. 그러니까 아직 그 폭과 너비가 마음속에서는 형성되지 않은 반증이다. 그것을 사유로 넓히는 일은 글 읽기에서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나도 어느덧 그리 된 것 같다. 천 쪽이 넘는 긴 내용의 책을 대할라치면, 엄두가 나질 않는 것이다. 심지어는 두께가 아니라, 난해한 철학이나 사회과학 서적은 분량이 3~4백 페이지라 하더라도, 이번에는 깊이가 태평양이다. 만약 부피도 상당하고 깊이도 깊다면, 이는 지옥이다. 그런 책들을 장식용으로 갖고 있기는 억울한 노릇이기도 하고...
3. 생각은 길바닥에 깔려 있다.
화성어로 쓰인 것 같은 이 책들은, 몇 번이나 바닥으로 패대기 쳐졌다.
'차라리 안 읽고 말지!'
그런데 이런 책들은 내용 이해도 잘 못하는 주제에, 한 번씩 손에 잡으면 정말 대단한 영감에 직면하게 된다. 그 뜻을 알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다. 사물에 유추하고 그림을 그려보는 등, 내 마음대로 앍어가다 보면, 글을 쓸 때 저런 것들이 이런 것을 뜻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에 직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래, 엉터리로 읽어도 나름대로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심지어 누군가는, 오히려 오독이 제대로 읽는 것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그래서 이 만리장성 같은 책들을 버리지 못하고 곁에 두고 있다. 심오한 사상가는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어렵게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신을 독보적으로, 접근을 금지해 비평조차 못할 정도로 구덩이에 빠뜨려 버리면 되니까!
그러나, 그것이라도 언젠가는 길을 걷는 가로수 잎 사이에서, 길게 깔린 보도석에서도 튀어나온다. 오늘도 그것을 줍기 위해 나는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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