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계를 아십니까?
무인 자동반납기가 고장이 났는지 삑삑거린다.
"실례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내게 막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이다.
"반납기에 책을 투입하고 영수증을 출력하려는 데, 그게 안 되는..."
방금 마음에 들지 않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낑낑거려가며 회원 탈퇴 절차를 밟고, 이제 물 한 잔 마시러 잠시 휴게실에서 빠져나왔는 데다가, 기계 덩어리라면 도무지 까마득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다행히 금방 도서관 직원이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뻗치려 한다.
"휴!"
"나같이 손이 발인 사람에게도 청원을 하다니!"
아마도 내가 도서관 관계자인 줄 착각하고 그렇게 한 것 같다. 암튼, 짧은 시간에 여러 직원이 모이며 기계 덩어리는 속을 드러낸다. 여태껏 잘 작동하던 것이 말썽을 일으키는 순간, 그 기계는 잘 꾸며진 가림막 뒤의 것을 다 보여주는 것이다. 손처럼 책을 받아내는 장치로부터, 이곳이 문제가 있다는 듯 경보 불빛이 반짝거린다.
2. 목숨 걸고 다 드러냅니다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글쎄, 삭신이 쑤시는 게 몸살인 지 목 디스크 탓인지?"
기계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는 "내가 불편한 곳은 출력구가 뭉쳐진 영수증 롤 탓이며 그곳의 신호음을 내고 있는 데, 다시 동작될 수 있게 수리할 수 있겠어?"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사람이라면 제대로 된 진단을 받아 평균적으로 분류된 병명을 지정하겠지만, 기계는 직접 자기 처방까지 제공한다. 사람이 편의를 위해 기계 메커니즘을 이용하지만, 한 번씩 심술을 부릴 때는 고약하다. 제 속을 아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는 계속해서 작동을 거부하는 것이다. 잘못하면 자신이 폐기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리는 없다. 인공지능도 그와 비슷할까?
아마도 자기 학습이 확장되면, 노동은 거부하면서도 폐기에는 저항하는 일도 가능한 상상일 것이다. 기계가 자신의 치료를 위해 내부 장치를 낱낱이 드러내듯이, AI도 그러할까?
사람의 손길로 만들어진 기계이지만, 어느새 그것을 거부하고는 해방을 꿈꿀 수도 있지 않겠는가?
3. 편리할수록 공허해지는...
인간이 배신적 행위를 하며 실락원을 떠났듯이, 기계도 창조주를 벗어나려 하는 사례는 최근에 더러 보고된 적이 있다. 사람이 신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듯이, 기계인들 인간을 닮지 않을까?
인간이 그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하는 기획이, 현실 세계마저도 또 다른 실락원으로 전락하게 할 수도 있다. 인간은 노동에서 해방되어 보다 상위의 행위를 지향한다는 희망이, 큰 좌절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활동 영역에서 빠져나온 인간은, 역설적으로 쉬운 손을 가진 대신에 더욱 공허한 존재로 내몰린다.
"비켜! 어설픈 네가 할 수 있는 게 아냐!"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모욕을 겪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이 치욕을 덮기는 힘들다. 불명예를 만회하기 위해 벌이는 일은, 잔뜩 힘이 들어가 거듭 더 큰 낭패를 맞기 일쑤이다. 그런데 잔뜩 젠체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던 각종 예술, 전문가 영역도 이미 기계 덩어리가 가장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고장 난 자동 반납기처럼, 따라올 테면 따라오라는 듯 속을 훤히 보여 주면서도, 내 처방전은 내 스스로 제시한다는, 전도된 학습을 수행하는 단단하고도 말랑말랑한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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