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에도 뵈었죠?
"네, 네! 작년 것과 별로 변동이 없을 것이라 해서 손을 좀 본 다음에 미리 작성한 양식이거든요."
방금 곁을 지나는 데 이런 통화 내용이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아마도 연간 반복되는 것을 대비해 예비하느라 일을 진행하는 것 같다. 요즘은 지난 뉴스를 색인해 보기가 매우 쉽다. 수천만 권 분량의 기사가 인터넷에 가득 저장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정말 오롯이 지나간 것이 있을까?
현재는 지난 일의 반복이고, 미래는 오늘의 되풀이일 것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허리케인은 예전에도, 지금도, 다음에도 규모와 시간이 다를 뿐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럼에도 교훈이라는 건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뿐이다. 여전히 피해 규모를 줄이는 정도뿐이지...
그렇다고 역사주의자처럼 역사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또, 반복되는 것이라도 그 시점만의 의미뿐이라면, 무엇을 미리 준비하는 게 무용한 일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이 끝없는 반복에 관한 것이다.
2. 나도 살아야죠!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 영동지방엔 해마다 비슷한 시기에 산불이나 수해가 발생한다. 국가 재정 문제이지만, 그럴 것 같으면 방재 시설을 충분히 갖춘 다음, 최적의 피해 예방을 도모하면 되지 않느냐는 한탄도 매번 반복된다. 자연 현상을 인간이 어떻게 막을 방법은 없다. 그래서 과거사는 현재에도 나타나고, 미래에도 도래한다. 과거는 다만 기억 속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 계열로 보면, 있지 않는 것, 있는 것, 있을 것이지만, '있는 것'이 중심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나 간 것이 지금에 재현되고, 다가 올 것은 현재가 암시한다. 인터넷 뉴스 거리를 조회해 본다. 미국 총기 사고는 2014년에 273건, 2021년에는 690건, 2024년에는 2월까지만 해도 대규모 사고 건수 49. 사망 80. 부상 170명 이상이며, 그 이하 규모나 자살같은 건 포함되지도 않은 숫자이다. 자유가 흘러 넘치고 미국 시민들이 개인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역사적 유래야 우리가 뭐라 간섭할 처지는 아니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야만'의 반복이다. 역사적 죄악상은 그들의 총기 소지를 결코 정당화하지 못할 것이지만, 원주민 저항과 식민지 영국에 대항하거나 광범위한 영토에서의 느린 대응 속도에 자구책을 부여할 수 밖에 없다는 다양한 변명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3. 틈으로 회귀하는...
하지만 거기서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문명화된 나라에서 가장 야만적인 것의 회귀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과거는 그냥 흘러간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되돌아오는 잔여라는 것이다. 현재도 그런 것을 남길 테니, 그 잉여는 사실상 시계열을 통해 내내 현재화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난 일들의, 그리고 현재의 일들이 시점을 달리하면서 드러날 뿐이다. 그러니 반복이란 건 사실 관념적 구분일 뿐이다. 반복이라면, 우리가 '반복'이라는 말을 반복할 뿐인 것이다. 나는 지난 일을 검색한다 분명히 지난 것이며 잊힌 것이다. 잔상만이 희미하게 남은 이 일은, 오늘 문득 되살아 난다. 내가 어릴 때 이런 습관이 있었다는 걸 잊어 먹고 있는 사이, 내 아들에게서 '어쩌면 제 아비랑 똑같냐?'라는 말을 듣는다. 나의 과거가 여기에 나타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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