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 닦고 나오지 말고, 나와서 발 닦기
'위이잉'
청소기가 바닥을 훑어가며 먼지랑 흩어져 있는 작은 조각들을 빨아들인다. 간 밤의 흔적들이 진공청소기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다. 밤새 속삭이던 사물들의 이야기도 흡입구 앞에서 분해되어 암흑 속으로 돌입한다. 그날의 새로운 서사는 말끔하게 지워진 바탕에 내려앉을 준비를 한다.
"발바닥 물기 좀 닦고 나와!"
방금 화징실을 나오는 순간, 스토리 보드를 얼룩지게 한 탓으로 역정을 듣는다.
어떤 자취를 남겨야 무탈한 것일까?
돌아서 봐도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발에 밟히는 것보다는, 눈에 밟히는 것이 더 큰 모양이다.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전혀 윤곽이 없는 것이라?'
누구든, 무엇이든 그 잔영을 남기게 되어 있는 데...
뒤따라 뿌려진 것은 청결의 문제이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귀감이 될 것이 아닌가?
2. 없는 것에도 있는 것이 있다. '틈'
어떤 위대한 사상가나 학자는, 기록하고 남기는 자체를 거부해 일생에 단 한 권의 저술에도 손을 대지 않은 사람이 있다. 분명 유작들은 후대에 영향을 주고, 보다 반성적으로 사유를 풍부하게 해 줄 텐 데 말이다. 모두가 천재가 아닌 마당에,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생각만으로 제 사유의 깊이와 넓이를 더하기는 힘들다. 물론, 타인의 생각은 편견을 갖거나, 자신만의 고유한 사념이라 취급하는 것을 오염시키기도 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것은 존재의 위치를 확장시키는 이익이 훨씬 더 큰 것인 데...
진공청소기는 바닥에 뒹구는 작은 부스러기들을 흡수한다. 그것은 놓인 쓰레기통으로 그 수집품을 토해 낸다. 애초에 그 출입구는 진공 상태를 이용해 바닥을 훑어 내린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티끌조차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진공을 채우는 것이 별 쓸모없는 쓰레기라?
엄격히 따지면 세상에 빈 것, 빈 곳은 없다. 무중력처럼, 힘이 '0'이란 상태 외에는 공간이라는 것도 그냥 빈 곳이 아니라, 공기로 채워져 있다.
'공간'
'빈 것의 사이'
3. 써도 될까요?
없는 것의 사이라니?
주변은 무엇인가로 채워지고, 순수 빈 곳이 있다는 것처럼 들린다, 아마도 물질적 개념보다는, 관념적인 것일 게다. 채워진 것이 있으니 그렇지 않은 것도 상상할 수 있을 가능성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무엇인가를 끌어들이려 한다. 힘이 없는 상태에서 당기는 것이 발생하니, 참으로 묘하다. 물론 이것은 진공이 당기는 것이라기보다는, 주변의 힘이 빈 곳으로 분산되어 균형을 맞추는 현상일 것이다. 그런데, 물리적 힘이 아니라, 관념적인 힘은 어디서 발현되는 것인가?
무력함이 강력함을 해체하고 끌어 당긴다.
'일생동안 책 한 권 남기지 않겠다.'
'높이 날아 오르려면 가능한 모두 비워야 한다.'
'홈런을 날리고 싶거든, 어깨 힘을 빼야 한다.' 등...
물리적인 것도 있지만, 관념적인 옳음도 많다. 이 아이러니컬하게 보이는 사태를 맞아, 손가락이 주춤거린다.
할 말을 않아도 모든 말을 다 할 수 있는 데...
흔적을 뿌리지 않아도 족적을 남길 수 있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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