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나리철쭉이 있나요?
벌 한 마리가 머리 주위를 웅웅거린다. 방금 전에 꽃을 희롱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터였다. 꿀을 채집하느라 몸에는 꽃가루를 잔뜩 묻혔을 것이다. 이 벌이 묻힌 화수분이 종류가 다른 꽃 암술에 닿아도 수정이 일어날까?
철쭉이 아닌, 호박꽃에 앉아 머리를 쳐박고 또 그 같은 움직임을 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괜한 궁금증이 일지만, 까닭 없는 잡념이다. 벌이 옮기는 생성력은 말없는 식물에게도 정확한 대응으로 나타날 것이다. 만약 그런 교잡이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적으로 가능하다면, 세상의 꽃들은 호박 철쭉, 벚꽃 무궁화, 진달래 붓꽃 같은 길고도 긴 이름을 가지거나, 미리 결정된 명칭을 얻지 못하고 매번 새로 지어지는 타이틀을 가질 것이다. 또는 벌이 꽃과 교미를 해서 매화 벌 같은 것도 존재하리라!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꽃 섹스, 가능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기적이 일어난다면 몰라도, 자연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인위적으로는 그것들에 변형을 가한다. 같거나 다른 종류의 식물끼리 접붙이기를 하거나, 동물끼리 유전자를 조작해 전혀 새로운 종을 만들기도 한다.
2. 사람은 탄생이 아니라 제조된다고?
하이브리드 종을 만듦으로써 세상이 알고 있는 인식 기준을 붕괴시키는 이 행위는, 우연성을 필연으로 만드는 충격이다. 만일 우리 삶에서 모든 우연성을 제거헤 버리면 어떻게 될까?
표적에 따라 원하는 대상을 만들고, 어느날 불현듯 다가오는 각종 질병인자도 제거한 채, 인류 역사를 통해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될까?
자동차를 필요에 따라 하이브리드형으로 제작하는 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그것처럼 인간도 일종의 기계처럼 취급해 필요한 부품(?)을 추가하거나 삭제하면 된다. 벌들이 꽃 무더기에서 추는 유희처럼, 우연히 꽃가루를 같은 종에 갖다 붙이기를 애타게 쳐다보지 않아도 된다. 인간은 더 이상 태어나는 게 아니라 제조된다. 한나 아렌트가 분류하는 노동, 작업, 행위는 모두 낮은 단계인 노동으로 전락한다. 인간은 낮은 단계의 노동을 제거함으로써 정신적 활동의 높은 수준으로 이행하고자 하는 염원은, 기껏해야 작업 수준에 머문다. 우연성이 제거되고 필연성이 지배하는 마당에, 정치, 사유 같은 행위는 어디에 필요한 것인가?
3. 필연적 우연성이 아니라, 우연적 필연성이다
인간은 이처럼 불필요한 것을 덜어냄으로써 확실성을 담보하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라는 현상이 있음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과학은 태풍이 언제, 어느 경로로, 얼마만한 위력으로 불어 댈지 예측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과학의 힘을 가장 잘 이용하는 나라에서도 자연재해는 피해를 줄이는 수준일 뿐, 그것을 방어해내지는 못한다. 물론 그 엄청난 자연력을 막아 내는 건 우연, 필연의 문제가 아니라 불가능의 문제이다. 그래도 주민을 대피시키거나 피해를 최소화하는 조치는 취할 수 있으니, 그 한계 내에서의 필연성을 말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만약, 인간의 힘으로 허리케인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다면, 그 재앙으로부터의 모면을 필연성의 힘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공해상으로 그 방향을 전환한다 하더라도, 그로 인한 다른 사태는 예측할 수 있을까?
필연성의 대답은 결국 우연성으로 되돌아간다. 매실이 열리는 것은 그것이 매화나무이기 때문이지만, 꽃이 열리고 수정이 되고 마침내 열매가 열리는 것은 우연적 결과이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그 과정을 만들 수는 있으나, 그것은 탄생이 아닌 제작인 것이다. 꽃과 벌이 만드는 감성으로 이뤄지는 열매와는 아무래도 제작된 열매에서는 맛도, 향기도 떨어진다. 생명 현상을 조력할 수는 있어도, 제조업으로 떨어져서는 곤란한 일이다. 우연을 이기고 필연적으로, 우연적인 것을 필연으로 바꾸는 일에는 필연성이 아니라, 변형된 우연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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