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 의문의 1패
"개불쌍하네!"
이는 개가 불쌍한 게 아니라, 형편이 대단히 딱한 처지에 있다는 뜻이다. 정말 안타까운 상황에 있는 개라면, "개불쌍한 개네!"라고 그 맥락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이미 개는 안타까운 대접을 받는 존재로 쓰이면서도, 그가 주체가 될 경우에는, 마치 접두어처럼 쓰이는 '개~'라는 표현의 악센트를 갖는다. 개는 좋은 수식어보다는 주로 나쁜 뜻으로 활용되는 빈도가 더 많은 듯하다. 사람이 도리를 잊어버리고 엉망이 될 때는, 어김없이 그가 등장한다.
'개차반'. '개 같은 x'......
비유법으로 사용되지만, 실 내용은 그와 동일하거나 그보다 더 저열한 행위에 붙여지는 것이다. 개가 뭔 잘못을 그렇게 했길래 이런 불편하고 부당한 취급을 받는 것일까?
아니 조금 더 뒤집어 보면, 개는 주인에게 충성스러우며 매우 살갑게 대하는 반려 동물이다. 위험이 닥쳤을 때는 목숨을 걸고 주인을 구해주거나, 수백km 떨어진 곳으로 팔려 갔는데도 옛 주인을 찾아 몇 날 며칠을 달려 되돌아오곤 한다. 그러나 그에 비하면, 인간은 온갖 배신과 학대 등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로, 그 같은 개와 비교해 가히 비난받을 태도를 형성하는 것이다.
2. 자유라는 폭력
유기견이 야산에 들어가 사람을 피하면서 홀로 덤불 아래 새끼를 보호하고 있다. 인근 주민의 제보로 시작된 구조 활동을 통해, 이 개의 애처로운 모습이 영상에 담긴다. 새끼들을 돌보며 자신은 제대로 먹지 못해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는 형상이다. 한 차례 버림을 받은 데다가, 새끼를 키우느라 경계심이 한층 높은 탓일까?
인간의 구조와 보호라는 선의를 알 턱이 없으므로, 인기척에 극도로 신경을 곤두 세운다. 수식어로 쓰이던 '개'가 마침내 주어가 된 형편이 이렇다. 막연한 '개불쌍'이 그에게 중복적으로 얹히는 순간이다. 만약 이 개가 인근 주민들과 구조대원들의 의도를 안다면, 이 개는 더 이상 '개불쌍'한 사태를 벗어나게 되는 걸까?
우선을 본다면, 시청자들은 제발 그 개가 설치해 놓은 철창에 갇히고, 모르게 숨겨 놓은 새끼들도 안전하게 돌봄을 받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짐작하겠지만, 그 개 일가족은 마침내 구조되어 갑작스러운 호사를 누린다. 사상충 감염 검사도 받고, 영양 상태를 고려한 성찬도(?) 접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자유를 얻었던 이 개는 그것을 버리게 되고, 다시금 감금의 울타리로 들어서게 된다.
3. '개불쌍'한 것과 '개'가 불쌍한 것 사이
그렇다면, 이들을 그냥 그 상태로 자연에 적응하게 놓아두는 것이 진정 그들을 위하는 것일까?
이미 사람들에게 길들여져 야성을 한참 잃어버린 이들에겐,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일 것이다. 어느 측면을 어떤 시선에서 포착하느냐에 따라 자유는 구속이고 구속은 자유가 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손길이 필요한 그들에게 자연은 또 다른 폭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과 가까운 관계에서, 이제는 사람과 대척해야 하는 형편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에겐 자연에 재적응하는 것이 자유를 상실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손길이 뻗칠 땐 적어도 먹이를 구하거나, 늘 위험한 상황을 염려해야 하는 상황은 벗어나게 해 주지 않는가?
그러나 어떤 종이든, 그게 다는 아닐 것이다. 비록 엄청난 위협을 받더라도, 그것마저 내던지는 삶도 있다. 그들이 직면하는 것은 온갖 종류의 폭력이다.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면, 참으로 고귀한 것이다. 실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얻고자 몸을 내던졌는가?
자유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닌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바이다. 그것이, 이념적 대립하에서의 자유만으로 내용이 쪼그라든 것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다수의 문제보다는 소수의 그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모든 허용을 자유라고 하는 것에는 과속 방지턱이 필요하다고 여겨지기는 한다. 더불어, 만약 유기견이 주인의 묶음줄을 끊고 자기 판단으로 도망을 친 경우라 한다면, 자유는 새로운 억압을 초래하기 쉽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포획되어,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모든 사정을 감안해 보면 억지 비유겠지만, '개불쌍'한 것인 지, 아니면 '개가 불쌍한 것인지'는 자유로운 판단이다.
'문화연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 현상은 제조업이 아니다 (0) | 2024.05.02 |
---|---|
사회적 배설, 혐오 (0) | 2024.05.01 |
방해받을 자유 (2) | 2024.04.29 |
기억과 기록 (2) | 2024.04.28 |
근본은 다르지 않다 (2) | 2024.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