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일기, 읽기나 읽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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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일기, 읽기나 읽는 것인가?

by canmakeit62 2024. 5. 18.

1. 보라고 쓴 일기인 데...

책상 의자에 앉아 눈을 올려보니 어릴 때 아들내미가 써놓은 일기장 묶음이 보인다. 초등학교 때 기록한 것이다. 아마 자발적으로라기보다는, 학교 과제로 작성 한 것이리라. 곳곳에는 일기를 쓰기 싫어서 어지러운 필체로 갈긴 부분이랑, 더러는 왜 그것을 남겨야 하는 지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 흔적도 보인다. 심지어는 비슷한 내용을 복사하듯이 붙여 놓은 것도 있다. 선생님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일이 그때 그떄 아들의 심적 상황까지 파악해 가면서 논평을(?) 달아 놓으셨다. 물론 엄마나 나, 제 누이에 대한 불만 사항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치, 언젠가 그 당사자들이 열람할 기회가 있으면 그것을 읽고, 반성에 이르도록 촉구하듯 말이다. 일기는 순수 사적 영역이라 의도적 공개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분명한 사생활 침해(?)이다. 요즘에는 유치원생조차 함부로 이런 생활 기록을 요구하는 행위가 금지되고 있으며, 그것도 제법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시절이 허용하는 것은, 교육적 차원이라는 게 부가되었으니, 지금은 격세지감이 되어 버렸다. 여하튼, 매일의 기록은 자기반성을 위한 것이다. 단 한 줄의 무성의한 낙서 같은 것도, '그날은 왜 그렇게 무기력하게 권태로운 일상을 보냈을까?!' 하는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2. 함께 반성합시다

 자신만의 흔적을 수필이나 소설로 옮기면 일종의 작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러지 않은 마당에는 오직 자신의 자취로만 남겠지만....

그런데 그것은 순수 프라이버시를 제외하면, 흡사 타인이 읽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가족들이랑 해외여행도 가고 놀이 동산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는 데, 우리는 이게 뭐지?'

'이 봐요, 아저씨! 우리도 놀이 한 번 갑시다. 좀!' 이라고 쓰여 있는 페이지를 보니, 뜨끔한 것이었다.

"내가 그 당시 직장 생활로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과하게 바쁜 것도 아니었을 텐 데..."

사안에 따라 기술 내용도 달랐겠지만, 지나간 날들이 나를 겸연쩍게 만든다.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사춘기를 맞기 전에나 가능한 일이 되고 그 이후에는 간섭과 억압하는 존재로만 비치기 시작하는 데...

3.  거울 밖으로 걸어나오는 타자

기록은 상호 반성의 것이 된다. 역사서가 특히 그렇겠지만, 사실적인 것외에도 문학, 예술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거울을 쳐다보지 않아도 자신이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는 있지만, 어느 부분이 그러한지를 구체적으로 알기는 쉽지 않다. 거울을 깨뜨려 버리면 되겠지만, 타자라는 거울은 피할 수 없다. 주변을 의식하는 것이 어떤 주체적 삶을 말하느냐는 공격도 따르겠지만, 간주체라는 말처럼, 타자가 없으면 주체도 없다. 타인의 거울에 반영되는 것이 주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태를 돌려, 그때 아들내미가 희망하는 데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그의 일기에 최고의 부모로 기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는 최상의 자식이었느냐?''

이건 억지스런 반격이다. 그래서 반성은 부모 몫이 됨이 맞는 것 같다.

"응? 내가 그런 글을 썼다고?"

아마도 내 아들은, 그의 2세를 맞을 때면 유사한 일들을 겪을 것이다. 그때는 내 아들이 반성 주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는, 비슷한 감정을 가지게 될 것이다. 주체는 반성을 통해서, 타자와 마주함으로써 거울 밖으로 걸어 나오는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