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구겨 버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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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구겨 버리지 마세요!

by canmakeit62 2024. 5. 19.

1. 옆에서 거드는 종이

오랜만에 종이 노트를 폈다. 전자 노트북이 아니고 말이다. 이전에는 종이 위에다 글을 끄적 거리곤 하던 것이, 이젠 노트북 컴퓨터나 모바일 메모 기능을 이용하다 보니 그것을 사용할 일이 드물다. 혹자는 종이 위에 글을 쓰는 것이, 그것의 미세한 틈으로 스며드는 연필의 사각거리는 느낌이 좋아서라고 하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그렇다. 필요하면 즉시로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을 지우고, 곧장 새 내용을 쓸 수 있는 전자 매체가 편리하다. 더욱이, 한 번 쓴 것을 다시 전자 매체로 옮겨 글을 올린다든 지 하는 수고를 들고, 복사해서 붙여 버리면 되니 아주 효율적이다. 그런데 이런 글쓰기는 매끄러운 표면을 거쳐 기호들이 어지럽게 조합해 생각을 표현하지만, 손에서의 감각이 사유 자체를 옮기기보다는, 어째 '타다닥'거리는 글자판의 소음을 기입하는 것 같다. 더욱이 한참 쓰다가 수정을 하려면, 이전의 내용은 회복이 안된다. 이에 대해 아날로그 쓰기는 줄을 그어 삭제한 내용이 곁에서 되살아 난다. 그래서 글쓰기는 나의 오롯한 손놀림의 기능만이 아니라, 내 곁에서 공동 작업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자적 방법은 생각이 종이 틈새를 파고드는 것과는 다르다.

 

2. 내겐 너무 미끄러운...

컴퓨터가 작동 오류를 일으킬 때는, 이미지 같은 경우, ' X'자로 표시되는 것을 가끔 본다. 이 매끄러운 표면이 흡수한 이미지는 'X', '빈 것', '아무것도 아닌 것', '알 수 없음'이 되어 버린다. 놀라운 통찰력을 가진 현자가, '생각 내려놓기', '마음 비우기'를 말하면서 "그건 바로 이거야!" 하는 듯하다. 그러나 방금 본 'X'는 그 뜻이 아님을 잘 안다. 종이 위에 옮기든 컴퓨터에 수록하든, 어쩌면 글쓰기는 무위라고 할 수도 있다. 현대적 도구는 그것을 여과 없이 '쓸데없는 소릴랑 지껄이지 마라!'라고 꾸짖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암튼 그렇다는 것이다. 손을 거쳐 종이에 써 내려가는 것은 곁에서 'X'의 무위를 되돌려 놓는다. '항상 처음 것이 옳았다'라기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중에 평행하며 사유의 연결선상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쓰고 있는 중에도 다른 상념을 거든다.

컴퓨터에서도 순간 떠오르는 다음 내용을 옆이나 아래에 살짝 메모해 뒀다가 활용할 수는 있어도, 표면이 미끄러운 탓일까?

순간 미끄러져 놓쳐 버린다. 그런데 지면은 글들의 층위는 있지만, 종이의 마찰력으로 가까이에 남는다. 

3.  동시화하는 글쓰기

이 보이는 면과 긁히는 면은 모두가 기호를 통해 마음을 표현한다. 아날로그식은 생각이나 할 말이 많을수록 종이 뭉치 양이 어마어마하다. 어떤 부분을 수정하기 위해 찾는 데도 괜한 수고를 하게 만든다. 사유의 무게나 부피를 그렇게 나타낼 것은 아니지만, 그 규모에 압도되면 절제가 동윈 된다. 디지털도 전자적으로 그 양을 조절하겠지만, 평면상의 길이로 줄이고 늘일 뿐, 글이 호흡하는 공간적 차원은 입체적이지 않다. 그래서 쓸 수 있는 매체는 무제한의 수용 능력을 보이지만, 날이 갈수록 서사는 작아지고 짧아지고, 거칠어진다. 생각의 깊이도 화면이

머무는 한계 지점만큼이나 얕아진다. 아래로 내리기, 위로 올리기, 늘여 보기, 줄여 보기 등 보이는 것으로서의 글은 무수하게 많은 시절이다. 생각이 글로, 글이 이미지로 넘어오는 때이니, 글은 화려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그러나 시선을 잡지 못하는 글은 한 곳으로 숨어들거나, 마침내 'X'로 전락한다. 어느 방식을 선호하느냐는 단지 취향일 뿐이다. 그러나 아날로그 방식의 글쓰기는 행간이 있는 것 같다. 행과 행사이에 삽입도 하고 추가도 하면서 생각들이 웅성거리는 것이다. 디지털에서는 이런 걸 느끼기가 힘들다. 되옮기기가 귀찮아서 그렇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가, 동시화하는 하는 글쓰기인 것 같다. 행 사이에 숨은 실재를 불러오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