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산업시대를 억척스럽고 고집스럽게 살아온 67세 남훈은 굴착기 기사이다. 44살 때 늦깎이 딸을 얻은 그는 41세 때 ‘청년 일지’라는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둔 상태이다. 일흔에 가까운 시기에 은퇴를 다짐한 그는 그 노트를 펼쳐 들고 과거에 자신이 작성한 미래 계획을 확인한다. 그것을 계기로 그는, ‘새로운 언어 형식이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라는 생각과 함께 스페인어와 플라멩코를 배우게 된다.
그것을 자신이 ‘똑바로 설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그는 그 메모에 기록된 희망 사항을 하나씩 실행해 가면서 가장 아픈 손가락, 전처소생의 딸 보연을 만나며 스페인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딸과의 화해를 이루게 되는 그는,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에서 플라멩코를 추면서 인간에 대한 사랑이 가장 중요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2. 전후와 전쟁의 재도래
작가가 이 작품을 저술한 해가 2021년이고 작중 남훈은 67세로 설정되었으니, 그는 출생연도를 따져보면 1954년생이다. 어디에서 인물을 설정했을지는 작가의 상상이라기보다는 주변 생활사에 비춘 등장인물임을 훨씬 짐작하기가 쉽다. 남훈은 6·25동란이 막 끝나고 휴전 상태로 진입한 시기에 태어났으니, 폐허 속에서 삶을 일군 부모 세대에게서 그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겪으며 성장했을 것이다. 격동기를 지나온 남훈은 그가 사회에 발을 내디딜 즈음에는, 부모 세대 못지않게 오로지 먹고사는 일에만 매몰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흔한 해외여행이니, 문화생활이란 건 전혀 상상 밖의 일로, 잠깐의 여유를 부리는 것도 빈둥거리는 것으로, 마치 죄를 짓는 기분을 느끼는, 심리적으로 불편한 세대에 속할 것이다. 고급 레스토랑 같은 델 앉아서 점잖은 서비스를 받는 것 따위는 아예 우주에서나 벌어질 이야기처럼.
그들에게는 차라리 허름한 막걸리 집이나 안주도 없이 들이켜는 깡소주가 오히려 맘이 편하다. 오로지 생업에만 매몰되다 보니 다른 것에 눈길을 주면 사치스러운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이런 불안 의식 같은 것이 그들에겐 사회적 트라우마로 남아있고,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마침내는 ‘그들'이라는 타자로 분류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세대의 내면을 외면화한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모르기는 해도 작가는 이런 표면을 훑으며 부모 세대의 질곡을 이해해 보자는 차원보다는, 그를 통해서 개인의 한 단면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한 개인의 세계와의 접속을 통한 거듭나는 세계를 그리고자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인공 남훈이 춘 플라멩코는 거듭 읽기를 통해 다시 추어질 일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3. 세계의 분리
6.25 전쟁은 동족을 남과 북의 두 이념적 세계로 분리해 놓았다. 그로 인해 서로는 사고, 생활방식, 세상을 대하는 태도 등 모든 것에서 서로를 단절시키고,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먼 존재들로 되어 버렸다. 그간 대립을 완화하자는 노력도 무수하게 있었지만, 그때마다 언제나 실패로 끝나고 마는 일이었다. 그런 직접적 상황에 비유할 정도는 아니지만, 2019년 말에 시작된 코로나 19 시국은 전 세계를 고립, 단락시킨 점에서는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사건이었을 지도 모른다.
마치 실재가 도래하듯이, 세계의 모순점은 그 윤곽을 곳곳에서 드러낸 것이었다. 경제력이 약한 국가. 계층, 백신이나 각종 의료 물자가 조달되지 못하는 곳 등은 전혀 항거할 힘도 없이 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것은 남훈이 살던 세계에서의 현실적 고립, 통로 차단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것은 여태 자신의 세계를 고집하며 굴착기처럼 삶을 이끌어온 방식이 더는 유효하지 못하다는 걸 말한다. 그래도 그는 애꿎게 국수를 준비한 아내에게 밥을 해 오라는 것 같은 가부장적 자기 세계를 여전히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수록 그의 세계는 더 소외될 뿐이겠지만….
3. 저 너머 세계
이러한 세계에서 탈주 선을 그려볼 수 있게 하는 계기는 그가 41살 늙다리 청년일 때 작성해 놓았던 ̒청년일지'라는 자기 기록을 접함으로써 비롯된다. 작은 노트에 쓰인 일기는 41살의 남훈에게서 이런 아집과 단절의 세계를 일깨우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의 청년 일지에 적힌 버킷리스트는 자신의 새로운 세계와의 접속을 암시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가 동시에 시작한 자서전 집필은,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향한 미래적 성찰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해외여행(그들 타자의 나라)’, ‘새로운 언어를 통한 새로운 세계와의 관계'는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표상하는 것이다.
한편, 그를 그렇게 할 수 있게 지원하는 인물들은 남훈의 내면이 분리되어 나타나는 스페인어. 플라멩코 강사, 늙다리 청년에게서 상징된다.
우선 스페인어 강사 카를로스는‘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관계’를 매개하는 매개자이다. 기성의 한국어는 남훈이 속한 대한민국의 지역 공통어다. 하지만 그것은 표현 불가능의 언어로서의 한계가 아니라, 표현을 억제하는 언어이다. 가족들에게 쉽사리 사랑한다고 하지 못하는 것은 표현에 사용할 상징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용기 내어 그 말을 하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같은 뜻이라도 ‘사랑합니다’를 다른 나라 말로 ‘I love you'나‘Ich liebe dich’로 표현하는 건 한결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외국어에는 우리 말의 정동이 묻어 있는 게 다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랑합니다'라는 한국어를 역설적으로 구사할 줄 모르는 자신의 세계를, 스페인어로 전환하는 것이다. 또한, 설혹 그 말을 쑥스럽게 구사하더라도, 스페인어처럼 '주어-동사-목적어' 체계로, 지향하는 목적을 뒤로 놓고 주춤거리기보다는 동사를 주어 뒤에 바로 놓아 용기 있는 표현법으로 문법을 바꾸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더불어,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딸 보연을 뒤늦게 만나는 것에 대한 불안을, ‘만나봐야 안다’라는 말로 남훈의 고정된 세계를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플라멩코 강사는 남훈에게 세계 공용어인 몸짓 언어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그 언어를 통해 자신의 세계 속에 갇혀있는 남훈에게 열정이라는 것에 눈뜨게 하는 것이다. 반복적이고 현실적 삶에 갇힌 남훈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일본 영화 ‘Shall we dance'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 차이라면, 일상의 탈출이라는 대척점을 제시하는 것에서 그것을 한 겹 더 입혀, 새로운 언어인 스페인어를 쓰며 춤의 본고장인, 세비야 스페인 광장에서 연출함으로써 새 세계와 합쳐지게 하는 것이다.
늙다리 청년은 남훈 자신을 직접적으로 상징하며, 그에게 굴착기를 팔려다가 대여로 바꿈으로써 유보적인 자신의 그림자로 남기기는 한다. 계약서에 쓴 그의 곧은 필체는 청년 남훈의 삶의 태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표징이다. 그러나, 늙다리의 이름이 연예인 ‘김태희'라는 것에서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최고의 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청년은 남훈이 보연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그것을 계산된 숫자로 제시해 주지만, 남훈의 이런저런 속셈이 계산 불능임을 이미 알고 있다. 가족이라는 것은 중고 굴착기 가격을 연식에 따라 빼고 더하는 계산법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은유적으로 남훈이 진 빚의 중대함,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갚을 것인가에 대해 시각화하고 있을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임을 이미 행간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김태희같은 최고의 미녀로.
4. 합쳐지며 거듭나는 세계
그의 딸 보연은 남훈과 비슷하게 질곡의 세월을 헤쳐 나왔다. 보연도 험난한 시절을 남훈과 평행하게 살면서 소외, 고립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버킷리스트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들은 과거를 벗어난 존재들로 갱신된다. 분리된 원망이 녹아내리면서 첫째 딸이라는 생득적이면서도 새로운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남훈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카를로스는 딸 선아와 연인이 됨으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표현과 표현하는 표현의 합일을 통한 언어의 통합을 의미하고 있다.
플라멩코 강사 이름은 강남훈으로서, 주인공 남훈과 이름이 같다. 이름은 바깥에 주어지는 것으로, 성씨를 제외하면 외형적 일체화를 상징하는 것이다.
늙다리 청년은 달리 이를 필요 없이 남훈 자신을 투영한 것이다. 그의 이 셋, 플라멩코 강사, 카를로스, 늙다리 청년은 바깥에서 남훈을 안내하는 분리된 세계인 것이다. 그들은 남훈이 셋을 초대해 김치 파에야를 만들어 먹는 것에서 통합을 암시한다. 남훈은 굴착기 기사로 복귀하지만, 그것은 분명 다른 세계일 것이다. 그는 이제 클래식 음악을 켜고 굴착기 작업을 하는 대신에, 아마도 헤비메탈 음악을 듣고 있을 것이다.
보연을 다시 만나 그의 죄의식같이 포박되어 있던 그의 세계는, ̒플라멩코를 출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듯이, 그 세계로 합쳐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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