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러하다. 현실이 가상과 어떤 차이를 갖고 있는지가 의문스럽다. 지젝이 말하듯이 9.11로 뉴욕 심장부가 무너져 내린 것은 스펙터클한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래서 그는 그 사태를 실재의 도래라는 전통적인 해석보다는, 이미지가 현실에 들이닥친 것이라 말한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니, 그 구분에 혼란을 겪는 것이다. 환상의 횡단이라 하면 그것을 벗어나라는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자유주의의 환상이 실현되는 꼴이다. 그래서 그 이면을 보면 '악의 축', '선의 회복' 같은 게 거짓된 슬로건이 된다. 자본주의가 애초 품고 있던 모순이 극한점에 이르러 폭발한 것이란 측면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우리의 잠자고 있던 분노를 터뜨린다. 우리는 그 아픔을 잊으려고 하지만 그들은 애써 드러낸다. 일부 극우 세력들의 시대착오적인 망발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은 이 맘때 극성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한다. 무엇이 초조한 것인가?
만약 우리의 환상이 일본열도 침몰이라면 이것이 실제 발생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할까?
아주 늦게야 비로소 천벌을 받았다고 통쾌해 할까?
아니면 진정 인간이 회복할 사죄도 없어, 그냥 '그런 일이 터졌구나!'라는 메마른 감정에 불과할까?
우리 안에도 반민족적 숭일 세력들이 존재하지 않는가?
이들이 반역사적 종족이라는 기본적 비난외에도,
근본이 없다. '내가 옳다'라고 하면 그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들에겐 근거가 없다. 여지껏 열등한 민족이라는 식민지적 폐악이 지배하는 동안 그들은 기득권으로서 군림해 왔다. 지금은 시대적 배경이 다르다. 여전히 일본에 의탁해 사는 것이 한결 수월한 덕택에 무대를 잘 바꾸지 못한다. 설혹 자기부정의 변증법이란 변명을 하더라도, 고양된 자신은 어디에 갖다 붙일 것인가?
일본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전범이라는 자기부정을 넘어 자신에 이르러는 일에
실패함으로써 일본은 정체된다. 여기에는 폭발음 밖에 남은 게 없다. 지진, 해일같은 천재지변외에도
그들의 세상을 뒤집는 일은 어떤 형식으로든 발생할 것이다. 그 파열음 밖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끝내 한 편의 재난 영화로 쳐다볼 수 밖에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들이 현실과 가상을 혼동하는 한 답은 없다. 안된
말이지만 일본같은 나라는 우발적 원인에 의해 붕괴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 근거가 없으니 기초없는 환상에 의지하는 것이다. 숭일주의자들도 그러하다. 그 출발이 어떻든 그들은 근본이 없다. 말로 한다고 해서 설득당할 부류들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도 언어외에서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아직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전범들이 무대를 철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상은 계속된다. 그들의 현실에 도래할 것은 그런 스펙터클한 장면만이 남는다. 환상을 횡단하는 것이 끝내 실재를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상을 지탱하는 것이라고 하면 적어도 그런 환영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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