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은 자본주의가 세계를 압도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은 18세기 자유주의 이념과 잘 결합해 전 세계를 지구촌이라는 일자로 묶고 있다. 이는 국가라는 귀찮은 존재를 제거하고 자본이 그 충실성을 수행하는 데 아주 적합하다. 이미 국가나 사회는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면, 다음에는 무엇이 올까?
철저한 개인주의를 지향하는 것도 이에 전혀 다름이 아니다. 추상적 타협으로 맺어진 것이 국가나 사회이고 보면, 그 장치들은 개인 뒤에 숨는 게 마땅할 것이다. 그러면 국가나 집단은 어디서 형체를 유지할 것인가?
사회적 혼란, 국가적 위험이 나타날 때만 비로소 그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 말하자면, 국가가 있어 위험이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이 있어야 비로소 국가가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위험한 생각이지만,
위험은 개인이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조장한다. 만약 위험이 없거나, 국가가 나설 필요가 없는 경우라면 국가 존재는 무의미하다. 어느 한 tv 매체를 보면 그렇다. tv시청, 뉴스, 더 나아가 정치 놀이에 권태로운 시청자들은 아예 tv를 보지 않는다.
그래서 내놓은 생존전략일까?
내놓는 냐용들이 사람들의 분노를 유발하는 것 일색이다. 시사 프로그램이라기보디는 사회적 배설구를 마련하고 거기에 온갖 혐오를 동원한다.
'tv는 없다'가 요즘 형편이라면, '아직도 tv'는 있다'라는 아우성에 가깝다. 감정이라도 자극해서 존재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런 정도로 국가가 지구촌에 흡수되어 버리면 국가는 제 존재를 어떻게 드러내겠는가?
억지소리 국민감정을 뒤흔들어 놓고 제 존재를 호소하는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요즘 불거지고 있는 과거의 잔재들이 뜬금없이 불거지고 있지 않은가?
무고한 국민이 죽어가도 책임지는 사람 하냐 없는 국가가, 필요할 땐 그렇게도 존재도 없으면서, 그렇게 제 존재를 읍소하는 데에는 공분을 자아낸다. 더운 날 만큼이나 분노를 자아낸다. 제발 올바른 존재감을 드러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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