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CCTV 앞에서의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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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CCTV 앞에서의 쇼

by canmakeit62 2024. 5. 26.

 

1. 디지털 감금 장치

cctv는 폐쇄회로이다. 'closed circuit television'이니, 말 그대로를 옮겨 쓰면 폐쇄된 원격 영상 장치이다. 그것을 고속도로에 설치하고는 교통관리 센터에서 차량 흐름을 볼 수 있으니, 시력을 무한 확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원격이라는 거리는, 그것을 시각 앞에 끌어당길 때나 하는 기능이지, 사실상 눈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서는 코 앞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기능을 충분히 활용해 세계 최고의 범인 검거율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남의 눈이지만, 고성능 감시의 눈은 정말 피해 가기 어렵다. 어디든 그게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없으니, 심지어는 우리 인구의 전 안구를 모아도 이보다는 적을 것 같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 행동거지가 조심스럽러워 지겠지만, 가는 곳마다 뒤통수가 가렵다. 이 기기 앞에서 삶을 연출하려니, 모두가 연기자로 변신하는 것 같다. 비단 디지털 판옵티콘을 언급하지 않아도, 이미 그렇게 된 지는 오래이다.

 

2. 삶의 무의미화

그릇된 행동을 부인해 봤자, 이 영상에 기록된 과정은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조작된 영상이라고 한들, 속일 줄 모르는 기계 장치를 이길 수는 없다. 이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올바른 행동을 하면 그만이지만, 일종의 무의식처럼 일상은 진행되고, 후회할 장면을 남기게 된다. 무슨 일이 비로소 문제가 되어야 이 기기의 존재가 부각되지만, 설치물 자체는 무감각하다. 보고 싶지 않은 장면, 아름다운 풍경을 골라서 담을 줄 모르니, 항상 용량이 문제 되는 저장물이다. 그러다 어느 시기가 되면, 저장 공간 확보를 위해 기록이 삭제된다. 사람들의 삶을 무엇이든 저장해 두었다가, 쓰레기통으로 내다 던지는 것이다. 법적으로 괜찮다는 승인이지만, 증거 기록같은 비행이 아니면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매일의 삶이 불법 아니면, 무의미한 족적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지워진 저장 공간에서, 새로운 삶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눈을 부라린 이 cctv는, 무기력한 일상을 권태롭게도 기록한다. 연출자는 없고, 각자가 우정 출연하는 곳에서는, 배역이 따로 정해지는 건 아니다. 등장인물은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3. 

지나가는 사람 1,2,3...

'일방통행로에서 역주행하는 차량에 몸을 부딪힌다.

넘어지면서 신음소리를 낸다. 당황한 운전자가 위법 사항을 인식하고는, 행인을 부축하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병원엘 갈 것을 권유한다.... 컷'

이 훌륭한 연기 앞에 cctv는 갈채를 보낸다. 잠깐 사이 비추는 각도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는 범행 방조범이 되어 버린다. 불법의 탐지지가 때로는 그것의 조력자가 되기도 한다. 그가 역할을 부여하지도 않았지만, 시나리오에 따라 범인 1, 2 가 된다.

영상 속에 비치는 연기자들은 죄다 범법 활동을 가정하고 있을 텐 데, 모든 출연자들은 보관 기간이 한 달 주기이면, 매달마다 사면받는 셈이다. 한 달간 재수 좋은 피의자로 살기가 이어진다.

'피의자는 유죄로 확정되기 전에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헌법 규정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적으로 국민은 모두 피의자 신분이며, 증거가 없는 한 무죄로 추정한다는 것뿐이다. 그것도 간주가 아니라, 증거 등으로 번복할 수 있는 추정뿐이다. cctv는 매일 우리를 쳐다본다. 그 앞에서 감시자를 놀리느라 일부러 해괴한 몸짓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기계는 흥분하지 않는 냉철한 눈이다. 요행히 그 눈을 피했다면, 시한으로 폐기될 너절한 일상이 그대로 남는다. 버리고 싶은 삶이 있다면, 한 번쯤 cctv앞에서 쇼를 해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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