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적 구획선
앉아도 되겠나요?"
"네, 물론이죠!"
빈자리가 많음에도, 나와 마주 앉으면서 양해를 구한다."
정해진 것도, 소유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바로 앞에 앉는 것이 부담인 모양이다. 다른 곳을 찾고자 하면 햇빛이 들어오니, 그늘에 앉을 필요가 있고, 그것이 바로 마주 보는 곳이니, 양해 사항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눈을 슬쩍 올려보니, 몸이 정상이지는 않은 모양이다. 혈관계쪽에 문제가 있는지, 꼬고 앉은 다리가 떨린다. 정상 생활을 하지 못하는 형편인 것 같다.
이러니 행동이 위축될 만하다. 전염병처럼 병을 옮기는 것도 아니지만, 타인이 의식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감사할 일이 많겠지만, 소위 정상인이라 할 사람보다는, 오히려 그 사람들이 위안을 주는 것이다. 이 가볍게 분할하는 선 위로는,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매우 굵은 선이 지나간다.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날마다 구획선 안에 선다. 발만 옮기면 쉽게 넘을 수 있지만, 사회적 설정은 그렇지 않다.
2. 의문의 1패
조금 후에는 할머니 한 분이 또 그 옆에 앉는다. 서로 알고 지내는 눈치다. 또 다시 구분선을 본다. 노약자, 몸이 불편한 사람. 어느 곳으로 가면 나도 이 인위적 나눔에 포함될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내가 방금 고개를 끄덕이고 인사했는 데.."
획인과 확인이 교차한다. 분할선 밖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재차 확인이 필요한 것일까?
내가 신체적 결함 탓으로 제대로 나를 인식시키지 못했을 까봐 그랬다는 듯하다. 사회는 이런 방식으로
명시적인 줄긋기를 확인시켜 주는 건 아니다. 그래서 차라리 그 은밀한 분계선이 더 무서운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느냐?"는 듯, 암시적인 배제가 더 힘들다. "접근 금지"라는 팻말은, 그것을 명확히 알아보는 사람을 향산 것이 아니다. 그것을 무시하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을 향한 것이다.
"학생들은 주어진 과제를 충실히 수행하고 교칙을 준수해야 합니다. 복도에서는 뛰지 말고..."
그것을 어기지 않을 사람들만 애꿏게 일장 연설을 듣는다.
"위반자들을 불러 모아 나무랄 일이지 왜 어기지도 않은 우리에게 야단이람!"
3. 보이지 않는 선
이런 경험도 있다. 해외 연수를 하던 시절이었는 데, 나는 제시된 과제를 꼬박 제출했더랬다. 주변 사람들이 게으름을 피워서 그렇지....
그런데 숙제를 검사하던 강사는 미제출자는 접어둔 채 계속 내 과제물안 가지고서는, 작성 방법이 잘못되었다느니, 표현이 수사적이라느니 하는 것이 아닌가!
정작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아무 말도 않으면서......
제출한 게 없고, 그래서 평을 할게 없으니 당연하기는 하다마는.....
내 성과물에 대한 비평은 사실 그들에게 향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다소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하루는 불민 사항을 토로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것도 "너희들도 숙제 좀 해 와라! 한국인들 망신시키지 말고!"라는 메시지가 될 것이었다.
분리선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낭의 담을 넘기가 쉽다. 여전히 선이 어디에 그어져 있는지 모르면서 우리는 분리선을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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