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균등한 사회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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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균등한 사회가 가능한가?

by canmakeit62 2024. 5. 27.

 

1. 재생산적인 것이어야 하는 가?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란 인식이 확산하고 비혼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기업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비혼 직원에게도 회사에서 지급하는 결혼축하금과 같은 '비혼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다.[한국경제 5.27]"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기사 내용이다. 알다시피, 부조는 경조사같은 경우에 이를 축하나 위로하면서, 경제적 부담을 어느 정도 조력하는 풍습이다.

그런데, 혼자 사는 것에서도 어떤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법적으로 보면, 결혼을 하는 사람에게만 회사에서 축의금을 전달하는 것은 차별의 소지가 있을 수는 있다. 실질적으로 따지면, 비혼자가 회사 성장에 더 큰 기여를 할 수도 있다. 물론 부조금은 회사에 대한 기여 여부를 따져 지급하는 인센티브는 아니다. 문화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하면, 기각되거나 새로운 관행을 수용하는 차원이 될 것이다. 부조는 어찌 보면 문화적 측면 외에도 경제적인 것도 있을 것이다. 공동체 사회에서 재생산의 순환에 기여하는 측면같은 것이면 너무 노골적인 것인가?

 

2. 평등주의?  균등주의?

차별을 주장하는 입장을 보면 일견 이해되기는 한다. 비혼을 통해 회사 일에 보다 집중할 수 있고, 더 큰 생산성을 발휘하는 데, 심기가 불편하다. 사회적 재생산 조력자로서 간접적 역할을 맡기도 하지만, 어차피 기업이 중점을 가지는 것은 물질적 생산력이다. '노동'이라는 생산 수단 확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비혼자들이 더 우대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 때문에 결혼을 결심할 만한 사람은 없지만, 혼인하지 않을 자유도 혼인의 자유에 포함되는 만 큼, 차별 시정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 실제 비혼금을 지급하는 회사도 존재한다. 사회적으로 장려된다고 그것에만 지원을 하는 것은 마땅치 않아 보인다. 문화적으로 보면, 부조는 일정 금전을 증여함으로써 공동체의 결속을 확인하는 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문화적으로도, 비혼자들은 배제에 속한다. 필요하든 말든, 단 몇 푼 이라도 증여함으로써, 공동체의 일원임을 인정해 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자녀를 출산한 직원에 지급하는 장려금도 문제가 될 것이다. 양육의 의미가 매우 중요한 현시점에서는 그것마저 고개를 들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능하는 사람들을 사회 밖으로 밀어낼 수는 없다.

 

3. 새로운 윤리가 필요한 시기

평등이란 참 어려운 문제이다. 문제는 혹, 균등과 평등의 한계선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네가 누리는 것은 나도 누려야 하는 것이다.'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은 너도 누리지 못한다'

이런 악무한을 조정하는 것이 사회적 장치이며 합의일 것이다. 어떤 제도가 시행됨으로써 일어나는 파열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요즘은 최종 심급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가 없다. 

종교, 관행, 합의...

이런 것들도 요즘엔 많은 경우에 무색하다. 그래서 거리나 광장이 배제를 둘러싼 상징적 저항 장소가 된다. 공개된 곳은, 자유로운 공간이니 만큼, 이의 중재자가 없다는 것이다. 

"먹고살 만한 족속들이 더 내놓으라고?"

그들에게 물어보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이제 평등은 균등을 향해 나아가야 하니, 새로운 윤리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방향은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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