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06 법의 형식 법은 고정되어 있으며 현행 질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설정된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같이 급변하는 세계에서는 규정 내용은 늘 지체된다. 말하자면 최소한 현재가 진행되고 있는 데 과거가 적용되는 셈이다. 거기에 미래가 작동하는 상황이면 아예 절망적인 일이다. 카프카 소설에서 보듯이, 법 형식은 '법'이라는 문을 통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런 형식이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문지기가 보기에 줄을 선 대기자가 통과 여부를 심사받아야 할 대상인지 여부 식별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종전 기준으로 출입을 제한하던 판단은 혼란을 겪게 된다.문제는 머뭇거리는 문지기 뒤에서, 현실을 뒤흔드는사태가 속출한다는 것이다. 이는 참 모순적이다.법은 그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 주목해야 한다고 하면, 어떤 신종 .. 2024. 11. 29. 직업적 윤리 모든 게 직업화되니, 윤리란 상호 공동체를 보존하는 고귀한 준칙이기보다는 자본주의 질서를 조율하는 또 다른 규칙 같다. 물론 윤리를 현실에 갖다 붙이면 그것은 변형된 십계명이기도 하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자본주의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은 참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거기서 검약하는 정신 따위와 천국, 예정 조화설 따위를 빌려왔다는 것인 데 과연 그럴까?아마도 자본주의는 자기증식하는 것이라 개신교 윤리가 제공한 기반이라면, 거래 이익을 남기는 도덕적 찜찜함을 정당화시켜 준 것이 아마 다른 모든 것을 능가할 것이다. 물론 그런 막후 스토리를 언급하는 것은 억지 거나 시대착오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젠 그런 배경조차 잘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아니 그런 막후 이야기는 듣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이젠.. 2024. 11. 27. 작은 세계 컴퓨터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탓인지 무얼 하나 접속하려면 속도가 몹시 느리다. 마치 인터넷이 도입된 초창기 시절 같다. 어찌 살았을까? 눈치도 없고 감정도 없는 이 기계 덩어리가 반응하는 걸 보면 매우 울화통이 치미는 데..,하도 속도, 속도 하다보니 어떤 게 속도의 감성인 지를 모르겠다. 그렇지만 인터넷 다음 회면이 버튼 작동과 함께 실시간으로 바뀌는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 노트북에서는 처리하느라 시스템이 움직이는 것을 조그만 원이 회전하는 그림으로 보여준다. '놀고 있네!' 돌아버리겠네!'이런 심리가 화면에서는 그대로 동심원을 그리고 있다. 구글이 몽땅 장악한 탓에 뭔가 심술을 부린 듯 해보이는 데, 지식이 짧아 잘 모르겠다. 암튼 컴퓨터에서 무슨 작업 하나를 하려면 속이 터진다. .. 2024. 11. 26. 요즘 말 말을 길게 늘어뜨리면 초점을 잃게 된다. 주절주절하다 보면, 마침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가 길을 놓친다. 그래서 무슨 말이나 글이 아닌, 소음이나 부호의 나열로 바뀐다. 이에 대해 언어를 압축해 표현하는 것은 집중 효과는 있어도,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시키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요즘은 그것이 내용의 난해함보다는, 해괴한 축약어나 단순히 문장 리듬을 맞추기 위한 삽입어 따위로 표현을 알기 어려운 게 많다. 세대를 구분해 그들 계층의 소통 맥락을 추구하는 점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정말 서로 간에 다른 곳을 쳐다보는 경우가 많다. 현세대에게는 소리글자임에도 근원을 알기 어려운 한자어 때문에 실소를 금치 못하는 오해 사례를 접한다. 이에 대해 지난 세대는 요즘 말이 도통 .. 2024. 11. 25. 과학적 우주 메타언어는 없다'란 말이 있다. 오늘날에는 거대 서사가 없고, 그래서 상위에서 군상을 통일해 포섭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시대를 지배해 왔던 유교적 사고가 이젠 잘 먹혀 들어가질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잘못하면 거친 반격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요즘 길거리에서는 이 핑계로 함부로 타인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하물며 종교 같은 것도 어떤 '따위'에 불과하다. 유일하게 있다면 과학뿐이라고 한다. 그것도 도구적 이성만 말이다. 그래서 과학에 비춰서, 모든 걸 설명한다.과학에 비친 종교는 미신이며 신화이고, 예술은 정밀하지 않은 주관일 뿐이다. 하지만 과학이 잊고 있는 게 있다. 바로 과학도 일종의 신화라는 것이다.과학도 원자가 존재한다는 어떤 환상이나 가정이없으면 이뤄질 .. 2024. 11. 24. 요즘 하늘 요즘 하늘에도 은하수가 좌르르 흐르는 곳이 있을까?우리나라의 경우엔 몇 곳 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하늘을 올려다보면 기껏 금성이랑 밝은 별 몇 개 밖에 없다. 이런 자연의 은하수는 자리를 지상으로 바꾸었다. 도로며 길가에는 인조적인 은하수가 가득하다. 그래서 하늘이 컴컴한 탓도 있겠지만, 가까이에서 무심히 접할 수 있는 불빛이 무수해 굳이 위를 쳐다 볼 필요가 없다. 자연의 힘은 인공적 자연에 자리를 빼앗긴 지 오래된다. 가능한 자연의 많은 것을 재현해 내니, 신비로움의 영역은 점점 쪼그라든다. 기이한 것에서 벗어날수록 사람들은 보다 지혜로워질 것이다. 이성적 세계가 보다 견고해진다.이런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감성은 무뎌진다. 자연에서 얻어 오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시간과 비용을 들.. 2024. 11. 23. 하나 얻고 하나 잃기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다. 둘을 다 잃는 것보다는 낫고 두 개를 모두 얻는 것에 비해서는 못하다. 물론 모두를 다 잃더라도 무엇 하나만 건지면 최상으로 되는 것도 있고, 하나에 집착하다가도 차라리 모두 놓아버리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 어떤 것을 획득하느냐는 지극히 주관적인 데다가, 그것을 계산식에 넣어 면밀히 득실을 따지기 힘든 경우도 많다. 그래서 어떤 선택이나 결단은 사전에 굳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후에 정당성을 얻는 게 많기도 하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은 분명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훌륭하다는 결론과는 다르다. 실제 일이 벌어졌을 때야 비로소 '그래 잘됐어! 이런 정도면 꽤 나은 선택이었어.' 하는 자기 위안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세상 일에 처음부터 멋진 결심을 보여주는 .. 2024. 11. 22. 존엄한 반복 열매 깝질을 벗기면 과육이 나오고 손차적으로 가다 보면 씨앗이 남는다. 씨앗 속에는 또 그것을 구성하는 것들이 숨어 있다. 그것을 계속 파고 가다 보면 무언가 열매를 구성하는 원인이 있지 않을까?이처럼 세계는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로 갈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우주로 뻗는 거시세계로 향할 수도 있다. 어느 쪽도 세계를 설명함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만 인간이라는 존재를 그만큼 신비로운 존재로 여기는 지 아니면 이 우주의 미물에 불과한 것으로 격하시키느냐는 관점 차이가 있을 뿐일 것이다.어느 쪽이든 존귀한 존재로 보는 것은 같을 것이다.거시적으로 보면, 역으로 이 우주를 구성하고 생각할 수 있는 각별한 존재인 것이다. 또 미시적으로 봐도, 온갖 요소들이 우리를 있게 하는 존귀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우.. 2024. 11. 21. 무거운 마음 마음이 무거울 때는 무슨 말이든 잘 들리지 않는다.제대로 말하자면 어떤 이야기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말을 하는 게 무의식적 행위이니 특별한 사정이 아니면 듣는 것도 비슷한 심적 상화미긴 할 것이다. 암튼 내적 심리가 혼란스러우면 주의는 온통 마음의 돌덩어리 무게에 짓눌러 수직으로만 작동한다. 마음의 눈으로 불리는 눈길도 발꿈치만 쳐다보게 된다. 모든 것이 땅바닥으로만 향하고 수평 방향으로는 시선이 가질 않는다. 아니, 더 자세히 살피면 아예 초점이 없다. 다만 걸려오는 말에는 사나운 반응만 오히려 의식적으로 준비되어 있다. 무관심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관심이 따라붙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거칠게 대응하는 것이다. 이는 '그냥 내 버려둬'하는 것이 무너져 내린 것에 대한 거부감이기도 하지만,.. 2024. 11. 20. 아직은 가을이 왔다는 흔적도 제대로 없다가 겨울은 순식간에 제 땅을 점령했다. 어떤 요란한 개선 행진곡을 울리면서 나타난 건 아니지만, 계절이 바뀌었음을 각인시키는 현상은 곳곳에 있다. 실내에 있어도 발이 시리다. 짧은 옷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따뜻한것이 몸을 당기는 시간이다. 세상은 이처럼 시기에 맞는 사물의 연대가 나타난다. 추운 겨울은 새 봄을 위한 대기 공간으로 여기면 이 지루한 시간을 망각하고 지낼 거리가 동원된다. 썰매를 지치든 눈싸움을 하든....그렇게 계절마다에는 나름의 의식이 뒤따른다. 그 겨울은 그래서 추위만큼이나 허전해지는 마음을 잊기 위한 행사가 있다. 한 해가 간다는 것은 허전함과 희망이 겹치는 이중성이다. 서운함이 클수록 희망도 더 확대될 것이다. 이루지 못하거나 도달하지 못한 .. 2024. 11. 19. 이전 1 2 3 4 ···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