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계선 밖으로
어릴 때 나는 비교적 몸이 허약한 편이었다. 어머니에게는 늘 그게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보통 궂은 일이면 형에게 다 시키는 것이었다. 동생은 여자라는 이유로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런 부모님 편애에 형과 동생은 늘 불만이었다.
"동생이 나약하니 어쩌겠어?"
형은 밖에서 놀 때도 항상 나를 보호해 주라는 의무를 안고 있었다. 그 덕택으로 나는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동네엔 또래나 위아래 터울이 나는 애들이 우글거렸다. 6.25 전쟁이 끝난 지 15년쯤 지난 때이니, 베이비 붐이 일어난 시기인 데다가, 피난민이나 일거리를 찾아 주변 농촌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판잣집이 복작복작하게 들어서 있었다. 아니 판잣집이라기보다는 루핑집이라 불렀다.
루핑이 roofing이니, 그것은 지붕을 얹힌 재료에 중점을 둔 것이다.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는 몰라도, 당시에는 아스팔트 재료로 쓰이던 검은 포장재에서 찌꺼기가 생기면 그것을 다시 곧게 펴서 지붕 재료로 삼은 것이었다. 문짝이라고 해봐야 나무 상자 조각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것이었다. 담도 멀쩡할 리가 없었고, 토담을 이은 벽에는 굴뚝이 비스듬히 서 있었다. 겨울엔 그 굴뚝 아래 볕이 좋아, 애들은 그 주변에서 제기차기, 구슬. 딱지치기, 말타기 등의 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재미없으면 인근 뒷산으로 올라가 또래를 이끄는 형의 지시에 따라 전쟁놀이를 해댔다. 목검을 중간에 꽂고는, 양쪽에서 달려와 먼저 칼을 빼서 상대를 베는 놀이는 그중 가장 짜릿한 행사였다. 자신의 민첩함과 용맹을 과시하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어린 마음에 이런 다채로운 놀이를 기획하는 옆집 형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해가 저물도록 우리들의 놀이는 계속되었고, 마침내 집마다 애들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야 각자의 안식처로 돌아갔다. 잠자리에서는 그날의 기개 넘치는 함성이 재현되곤 했다. 옆집 형이 잘 보살펴 주는 덕택으로 친형의 부담도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무슨 일 있으면 내게 말해! 내가 아주 끝장을 내고 말 테니까!"
그러나 더 이상 친형의 보살핌이 필요 없을 만큼 일상은 평화로웠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뒷동산에도, 골목에서도 놀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몇은 나와서 어슬렁거릴지도 모른다. 나는 살이 꺾여 비스듬히 한 곳이 내려앉은 우산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곳곳에 땅바닥이 패이고, 루핑 지붕으로는 떨어진 빗물이 기름 막과 마찰하면서 미끄러져 내리고 있었다. 주변엔 애들이 보이지 않는다. 자주 몰리던 굴뚝 집 주변도 잠잠하다.
"비가 와서 모두 집 안에 있는가 보군."
처마 끝을 타고 내리는 빗물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리는 순간, "OO 아!"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응, 형도 나왔네!"
반가운 마음에 목소리가 다소 높아졌다.
"비가 와서 놀지도 못하고…."
"그렇네. 산에 올라가서 놀면 재미있을 텐데…."
"그러게. 대신 우리 재미있는 델 가볼까?"
"어딜?"
"시장에 가면 재미있지! 약장수가 차력하는 걸 봐도 재미있고…. 원숭이도 데려 나왔을 거야!"
항상 행사용 텐트를 쳐 놓고 벌이는 야바위라, 비 내리는 날과는 무관할 것 같다
"그래 재밌겠다! 원숭이가 꽥꽥거리면서 약이 든 모자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신나고…."
우리는 군수물자를 나르는 철길을 건너 시장으로 향했다."
배 위에 돌을 얹어 놓고 한 사람은 해머로 내려지는 차력술에 이어, 주먹으로 대리석을 깨는 쇼가 이어졌다. 구슬픈 가락의 연가 비슷한 노래가 끝나고 예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이 약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지리산 영약에다가 정력제를 섞은 것으로, 아랫도리가 허한 양반들 한 번 잡숴 봐…."
키들거리는 구경꾼 사이로, 약장수의 비수가 꽂힌다.
"넌 아무리 그렇지만, 세수도 안 하고 사냐? 콧물이 말라붙은 게, 비가 오는데 거기라도 얼굴 좀 디밀고 씻어라. 까마귀가 형님이라 부를라!"
더 이상 있다가는 우리가 원숭이가 될 판이었다.
그와 나는 야바위꾼을 뒤로하고 난전 판이 펼쳐진 시장 안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나무판으로 짠 전시대에는 물총이랑, 플라스틱, 튜브 공 등 실로 다채로운 장난감이 전시되어 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우산 아래 꼬마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엄마에게 칭얼거리고 있다 걸리적거리는 우산을 접고는 비가 와서 제한된 공간이 된 터라, 장난감 상인의 시선이 잘 분산되는 듯하다.
"자 잘 봐."
그러더니 그의 손은 재빨리 진열된 장난감 하나에 얹혀 있다. 어수선한 틈을 타서 그는 슬쩍 물건 하나를 훔쳐냈던 것이다. 그곳을 빠져나온 그는 그 짜릿함에 쾌재를 부르는 것이었다.
"필요한 건 이렇게 얻는 거야!"
나는 뭐라 말하질 못했다. 그러더니 그는 이번엔 주전부리 과자가 진열된 가게로 나를 이끌었다.
"내가 하는 것 잘 봤지? 이번엔 네가 과자를 한 번 슬쩍해 봐!"
갑자기 그는 나를 공범으로 만들기 위한 지시를 내리는 것이었다. 은근히 주눅 든다. 하지 말아야 하는 이 행위를 나는 거부하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거기에서 나는 주인이 한눈파는 사이에 과자 몇 개를 슬쩍했다. 성공적이었다.
"거봐 할 수 있잖아!"
나쁜 짓을 했다는 죄책감보다는 그의 인정이 더 큰 힘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넌 이제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이번 일은 누구에게 말해서도 안 되고!"
그러면서 그는 만약 자기 말을 듣지 않을 땐 자기가 거꾸로 이번 일을 집에다 다 일러바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형이 시켜서 했잖아!"
"그런 적 없어. 나는 네가 몰래 훔친 과자를 나눠 먹었을 뿐이야. 그러니 네가 한 일이야."
짐작하겠지만, 그 후로도 나는 그에 이끌려 몇 차례 나쁜 일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정과 격려는 과자보다도 더 나를 달콤하게 하는 일이었다.
2. 경계선 안으로
우리 집에는 정면을 기준으로, 왼쪽의 단칸방에는 세 들어 사는 내 또래 아이가 있었다. 그와 나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자고 일어나면 바로 합류할 수 있는 놀이 친구였다. 그런데 그도 나 못지않게 몸이 약해 보였다. 항상 창백한 얼굴에, 마당에서 함께 놀 때면 그의 어머니는 늘 조심해서 놀 것을 당부하는 것이었다. 영문이야 알 수가 없고 관심 사항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노는 것은 주로 집 안마당이었다. 우리가 살던 집에는 마당 한가운데 우물이 하나 있었다. 그와 나는 우물에 얼굴을 비춰보면서, 잔잔한 물결이 얼굴을 찌그러뜨리는 것을 보고는 신기한 듯 재미있어했다.
어느 날이었다. 나는 동네 어귀에서 옆집 형과 마주쳤다. 그런데 그는 이번에는 나에게 정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었다.
"안돼! 엄마에게 들키면 큰일 나!"
"괜찮아 인마! 알게 뭐야. 몰래 빼내 오는 것인데!"
그는 내게 엄마 돈을 몰래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바깥에서야 나쁜 짓이라도 남의 것이니 덜 두렵지만, 안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은….
한참을 우물쭈물하던 나는 시선이 왼쪽 단칸방으로 향했다. 미닫이문이 반쯤 열려있고, 화장대 위에는 보라는 듯이 동전이 한 줄 높이 쌓여 있는 게 아닌가!
주변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내 친구도 엄마를 따라 어딜 갔는지 없다. 나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쓸면서 동전 몇 잎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동네 형을 만나 시장으로 향했다.
저녁에는 무슨 난리가 날 것으로 짐작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혐의가 있으면서도 셋방살이라는 약자의 침묵으로 범행이 소리 없이 덮인 것일까?
암튼 나는 무사했다. 그러다가는 마침내 사단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번에는 나 혼자 동네 구멍가게에서 낱개로 파는 초콜릿을 슬쩍 하려다가 주인에게 들킨 것이었다.
집으로 끌려온 나는 엄마에게 아주 혼이 났다.
그러면서 그간 장난감 같은 게 옆집 형이 주더라는 것이, 그럴 형편이 아닌데 어찌 된 것이냐며 사실을 말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매질과 으름장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간의 일을 실토했다. 옆집 형네에게 불똥이 튄 건 당연했다.
하지만 셋집에서 동전을 슬쩍한 이야기는 그대로 가슴에 삼켰다. 아마 셋방 집도 이참에 완전히 혐의를 굳혔으리라. 그러나 여전히 아무 말도 없다. 그렇다고 내 셋방 친구가 그의 엄마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는, 채근질 당하는 소리를 들은 적도 없는 데….
그 일이 있고 며칠 후에 나는 잊은 듯 셋방 친구와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아이들의 기억은 단순하고 쉽게 소멸하는 것이 이럴 때는 아주 편리하다. 우리는 예와 다름없이 우물 속으로 얼굴을 비춰보면서 놀고 있었다. 한참을 놀던 중에 그는 나에게 말했다.
"너를 잡아 볼까?"
우물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있던 그는, 몸을 기울이면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나 보다. 그가 몸을 반쯤 구부려 철봉에 오르듯 자세를 취하던 순간, 그는 손을 헛디뎌 우물에 빠지고 말았다. 동네 어른이 나타나서 그를 건지고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 정도 높이면 우물에 빠졌더라도 가벼운 찰과상 정도였으리라. 그런데 사흘쯤 지나서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는 병원에서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선천적으로 혈우병을 앓고 있어, 조그만 상처에도 지혈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 병은 그를 데려가 버렸다. 마당 우물은 메꿔졌다. 옆집 형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는 떠나는 마지막 눈길에서도 나를 원망하는 적개심을 놓지 않고 있었다. 세월이 제법 흐른 뒤, 동네에서는 그가 어떤 범죄에 연루되어 반대편 조직원에 피살되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3. 꿈속에서의 미로, 경계 선상에서
산등성이뿐 아니라 꼭대기까지 빼곡하게 판잣집이 서 있다. 나는 그 중간쯤 어느 골목에서 아랫동네로 이어지는 길을 택한다. 그 꼬불꼬불하고 내리막인 길을 지나면 이웃한 마을로 연결될 것이다. 나는 저편 동네로 넘어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런데 길은 위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마치 둘레길처럼 산허리를 휘어 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다! 동네에서 내려다봤을 때는 분명 이쯤에서 반대편에 보이는 마을로 이어져야 하는 데….’
그러면서 그 길을 따라가니 처음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온다. 이게 무슨 일인지 싶어도, 내려가는 중간에 한 모퉁이가 닫혀 있어 곧장 아랫동네로 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통과한 길을 기억해 가면서 내려가 보자. 그러면 최소한 막힌 길을 나와 다른 연결로를 찾을 것이고, 적어도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매번 막혀 있고, 몇 번을 반복해도 그대로이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꿈속의 일들이 너무나 생생하다. 하지만 왜 그런 꿈이 꾸어졌을까?
최근에 무슨 일이 꽉 막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도 아니고, 심리적으로 억압되어 가슴이 답답한 상황도 아닌 데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 번도 아니고, 같은 내용으로 형식만 달리하면서 똑같이 꾸어지는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로 되돌아가는 것도 아니며, 그곳을 벗어나고자 나선 길은 경계 선상에서 끊겨 버린다. 그러니 집요하게 그 경계에서만 계속 빙빙 돌고 있다. 그 비슷한 꿈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마을을 벗어나면 저 동네로 접근할 수 있음에도, 큰 4지 교차로를 벗어나기만 하면 애초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에 닿는 것이다.
‘빠져나갈 수 없거나 다른 세계로 발 딛는 걸 마음속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셋방 친구는 혹 내가 그의 방에서 동전을 훔치는 것을 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그를 크게 야단칠 수 없다는 것에서, 그와 놀아 주는 나를 떼내기 싫어서 속으로 묻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침묵은 매립된 우물과 함께했는지도 모른다. 옆집 형은 자신의 세계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둘의 죽음은 다르다. 나는 그 둘의 죽음을 알고 있다. 저 마을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는 경계지역에서는 들리지 않고, 그렇다고 내가 사는 동네로 복귀해도 나를 부르는 소리는 없다. 그들은 꿈에서나 나타나는 존재들로, 대신 아무도 나의 손을 잡고 놀자고 보채는 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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