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잊기 위한 기록
기억을 기록하지만 기록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록은 그 목적이, 기억하기보다는 잊기 위한 것이다.
'기억하라. 기록하라'는 것은 어느 일방의 목적과 수단이라기보다는, 양자의 방법을 모두 동원하라는 뜻이다.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으니 기록이라는 객관적 보조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지만, 심지어 기록을 보고도 자신의 시간을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어느 한 곳에 처박혀 있는 오래된 사진이나, 글 쓴 노트를 발견하고도, 그 내용을 보면 완전히 낯선 것이라는 걸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누구랑 거길 갔다고?'
'그떄 나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니!'
기억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새로운 내용들이 덧씌워질 때는 무의식 아래층에 묻힐지는 몰라도, 대부분 새로운 입력에 의해 지워진다. 그것이 덧씌우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엔 마치 데자뷔 같은 기억이 되살아 난다. 조선시대 과거 시럼 낙방자 시험지인 낙폭지나, 필요 없는 공문서를 물에 씻어 절구로 찧은 후 재활용한 환지에서는, 미처 지워지지 않은 글자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노장사상 같은 경우도, 분서갱유 사건에 휘말려 그 기록이 비밀리에 숨겨져 있던 중, '70년대에 발견되었는 데, 현재 전래되어 온내용과 비교한 결과는 심히 달랐다는 것이다.
2. 지식 확장을 억압하기도 하는 기록
현재 알려진 노장사상은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던 것이라, 그후에 이를 조금씩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의 파편을 모은 결과라고 한다. 그러니, 원사상과는 많은 부분을 이후 시대에서 각색해 편집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본래의 가르침을 되살릴 필요도 없고, 마치 새로운 사상이 출현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 아류가 본 편을 갈아치운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기록, 기억하지 않기 위한 기록!
기록은 그 보존을 통해 확실히 지식을 전수하는 역할을 함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때로는, 지식의 확장을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 기억하는 것을 삭제하지 않고는, 어떤 사유의 확장도 방해할 수 있다. 우리는 표절을 일삼은 저작권자를 비난한다.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위장했지만, 차인의 저작물을 베낀 것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닌 변명으로, 이 세상에 표절 아닌 게 얼마나 있을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것처럼, 타인의 성과나 행위를 학습 또는 모방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에도 말이다.
3. 인간 두뇌에 새기는 주름
그래서 기록은 그 존재로사 오히려 그것의 확장을 훼방 놓기도 하는 것이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생각 밖의 생각이라는 게 오롯이 존재할까?
요즘 젊은 세대에서 사용하는 각종 신조어라 하더라도, 기존의 용어를 축약하거나, 외래어를 뒤섞었을 뿐,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말 같은 건 아니다. 물론기술 발달에 따라 그것을 표현하는 각종 개념들이 새로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기록이 없어 가능한 것이다. 이를 재반론하면, 이전의 방식들이 발전을 거듭해 현재의 신기술이 나타난 것으로, 소위 말하는 완전한 창조는 없다고.....
기록은 인간 두뇌에 새기는 주름과 같은 것이다. 그 주름은 겹겹이 접혀, 덧씌워지고 아래로 침전하기도 하고 부지불식간에 융기하기도 한다. 주름 사이에서는 서로 다른 기억들이 얽혀, 영상이나 낱말들이 뒤섞인다. 그래서 기록과 기억은 따로 분리되는 별개의 기억 장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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