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에 인근 동산에서 춘란 한 촉을 캤다. 푸르죽죽한 민무늬라 별 볼일 없는 종이지만, 꽃 대가 둘 달려있어 꽃이라도 볼 요량으로 집에 다 옮겨왔다.
(아, 소유가 아닌, 존재로서의 삶은 실패!) 거기에다가 난화분도 아니고 일반 화분에 대충 심어서 현관문 탁자에 뒀다. 그런데 꽃은 개화도 허지 못한 채 그 상태로 봄은 지나버렸다. 그저 그런 난초라 별 관심 없이 지냈는 데 어느 날 보니 잎 한 장에서 무늬가 보인다.
"어, 전혀 모르고 가져왔는 데 변이종 기질이 나타나다니!"
그럼으로써 갑자기 욕심이 생겨버렸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옆의 난들도 살펴보면 미처 못봤던 것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여름이라 폴이 무성해 잘 식별할 수가 없을 테니, 주변이 정리되는 가을이나 겨울에 한 번 올라가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오늘 아침에 한 번 탐색해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날씨는 덥지만, 다른 형제들을(?) 찾을 수만 있으면 그게 대수인가?
30분쯤을 걸어서 그곳을 향했다. 그 중간에 나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동전 두 개를 주윘다. 5백 원짜리 하나와 백 원짜리 동전 하나, 도합 6백 원을 습득했다. 뭔가 운이 닿을 느낌으로 기분이 괜찮다. 그리고는 그 산에 닿았다. 그런데 주변에 풀도 많이 자라고 해서 봄에 보았던 환경과 몹시 다르다. 분명 여기 어디쯤에 무덤이 있었고 그 옆에 난초가 몇 촉 있었는 데, 무덤터가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분명 여기쯤인 데...더 위로 올라야 하나?"
풀이 무성해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길도 없는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찾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는 끝내 보이지 않는다.
"에이 못 찾겠다. 겨울 쯤에나 다시 와야 하겠다!"
찾던 일을 포기하고 하산을 결정했다. 그런데 여기저기 오락가락하다보니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더듬거리다 길가로 닿은 것 같은데, 빼곡한 대나무 숲에 닿는다. 허덕거리면서 다시 오르막 길을 올라 옆으로 가다가 내려오니 이번엔 과수 농가가 쳐놓은 울타리에 걸린다. 다시....
이번엔 농가를 지나쳐 주인이 나타나면 양해를 구하고 통과하려고 하니, 집 채 만한 개가 꽝꽝거리면서 덤벼들 듯이 다가온다.
기겁을 하고는, 그래도 그 와중?에 제보다 몸집이 큰 것을 위장하느라 팔을 벌리고는 천천히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이런 일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거의 탈진할 수준이다. 이제는 은근히 두려움도 생긴다.
"이거 자칫하다 119 부르는 일 생기는 것 아냐?"
마을 인근 동산에서 길을 잃어 구급대를 불렀다는 뉴스가 상상을 스친다.
이게 뭔? 일이란 말인가?
힘은 다 빠지고, 물통 하나 챙겨 온 게 없으니 목구멍은 불타듯하고...
그러고도 몇십 분이 더 지나 간신히 산책로를 찾을 수 있었다. '물 한 모금만'하던 절실함은 마침 아침에 주운 동전이 해걸해 주었다. 물 한 통을 사고도 2백 원이나 남다니!
이 절실함은 그리 큰 대가를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행복이란 게 있다면 멀리도, 큰 대가도 필요한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다. 다 털어내면 그 뒤엔 행복이 비로소 나타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