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게 아니라구요!
애들이 징징거리는 모습을 보면, 마치 새들이 소리를 둗우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무엇이 맘에 들지 않는 것인 지, 한참을 보호자 속을 썩인다. 배가 고파 그러려니, 분유통을 안겨도, 햇빛이 따가워서 그런가 그늘에 옮겨도...
새들은 나뭇가지 사이에서 쉴 새 없이 무슨 신호를 보낸다. 그래도 새들은 1차적 신호음과 소음을 구분하기나 하겠지만, 애들의 언어는 따라잡기가 힘들다. 아직 공통의 소통 기법을 갖지 않았으니, 불일치가 대부분일 것이다. 나중에 어느 정도 말귀를 알아듣게 되었을 때에는 더하다.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이니, 무엇이 통하는지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듯하다. 온전히 의사를 주고받으며, 사회적 규범이라는 것을 체득해도 이런 일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한 순간 말을 멈춰버리면 오히려 더 수월하게 합치를 할 수 있을까?
소통에 필요한 장치가 말이든 몸짓이든, 평균적으로 정해진 표현에 의할 수 밖에 없을 텐 데..
무언도 의사 표현의 한 방법이니 그럴수도 있겠다.
상대에 대해 못마땅한 것은 침묵하고 등을 돌리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도 있다.
2. 일방적 대화
무음이 길어지니 대화는 자신속에서 더 많은 소리를 전달한다. 무엇 때문에부터,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할지, 중개자를 투입하는 게 좋을지...
결국 중간의 연결을 통해 범위를 좁혀간다. 중립적이라는 가정하에, 서로는 누락된 뜻을 매개한다. 직접적인 상황에서는 왜 제대로 된 의사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일까?
자신의 편견에 기초해, 이미 결론에 도달한 것을, 다만 양해나 통보 수준 정도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을 상대에게 발설하는 것은, 비평이 아니라, 보충인 측면이 더 많은 것 같다. 혹시나 한 부분을 추가할 사항이 있느냐는 것이다. 소통은 어찌 보면 자유로운 맥락에서 이뤄진다기보다는, 일방적 전달에 가깝다. 토론 마당에서 조차도, 화자는 청자에게 어떤 말을 내뱉고는, 그다음에 떨어질 반론을 예상한 답변을 끄적거리 느라 바쁘다.
3. 진작에 알았다면...
지정된 주제에 관해 미리 준비한 토론 형식을 일상 대화의 경우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심지어 중립적인 사회자도 어느 한쪽 입장을 우세하게 거드는 경우도 있다. 주관적인 소통이니, 그럴 수도 있다.
말은 상대와의 의견 차이를 드러내고 서로 참조할 뜻으로 드러내는 것일 게다. 그런데 속으로는 상대를 제압할 반론으로 웅성거린다. 그러니 마주 선 당사자의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럼 너 알아서 해!"
일방적 파기를 선언하는 그런 말이 오히려 더 자신의 의견을 강력히 반영하는 방법이다.
"말을 하지 말든가! 누구 떠 보려고 내뱉는 것도 아니고..."
마음속 타자를 바깥에서 만나니, 비로소 무엇이 선입견인지가 드러난다. 자신 속에서의 결정 사항에 결함이 있는 것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무관계한 말이 더 큰 보탬이 되기도 한다.
"걔가 이렇게 했다네. 그러다 법적 분쟁에 휘말릴지도 모르는 데. 몰라, 알아서 하겠지!"
"그런 일이 있었다고?"
서둘러 진행하는 일을 철회한다.
"진작 그 말을 들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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