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모두가 떠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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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모두가 떠난 자리

by canmakeit62 2024. 6. 8.

1. 비가 갑자기 투둑 하며 내리다가 그쳤다. 

뜨거운 날씨라 잠시 시원한 공기가 가른다. 그러다 금세 그쳐 버렸다.
"올 테면 시원하게 확 내려 버리지. 잠깐 오다가 말 일은 뭐지?"
많이 졸리는 시간이다. 밖을 나서면 숨을 헉헉거려야 하니, 그건 면한 셈이다. 건너편 아파트에선 리모델링을 하는 모양이다. 드릴 같은 게 웅웅 거리며 쉴 새 없이 돌고 있다. 이곳에 정착한 지도 거의 30년이 다 되어 간다. 참 미련한 일이다. 남들은 다 더 크고 새로 지은 곳으로 떠나가 버린 마당에 우리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우리를 포함해 주변은 모두 재건촉을 위한 안전진단을 통과해, 아파트마다 성공적 사업 추진을 기원한다는 현수막이 나부낀다.
'저러고도 요즘은 사업성이 있을까?'
인구도 줄고 지방도 쪼그라드는 판에, 예전처럼 채산성이 있어 나서는 업체가 있을까?
암튼 각종 건설업체는 장래를 향한 기대감으로 들뜬 듯싶다. 건물이 뒤뚱거리지만 않으면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2. 속칭 돈이 되고 말고를 떠나, 조용히 놔두면 그게 더 나을 듯싶다.

 애들은 우리 단지가 실버타운이라고 말한다. 둘러보면, 곳곳에 애들도 많고, 아직 젊은 세대도 많이 눈에 띄는 데도 그렇단다. 아파트 연수가 제법 그렇게 되었으니, 내용은 그렇다 치고 외형으로 그런 평가가 내리는 가 보다. 그렇다고? 요즘 신축한 곳을 들여다봐도 별 요란스러운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다. 최근의 것이라도 금방 주차난을 겪는 건 마찬가지이고, 차이가 있다면 외부인 출입이 입구부터 통제되는 것일 게다. 우리는 그 출입이 제한을 받지는 않고 있으니, 오히려 인권(?)이 존중된다.
지킬 것이 많을수록 거리는 멀어진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는 곳이 이웃과의 거리가 좁은 그런 곳은 아니지만, 함부로 경비원에게 거칠게 구는 곳은 아니니, 그런 면에서는 훨씬 나은 편이다. 그냥 보수적으로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라, 건물 외관이 수려해질수록 사람들 마음은 황폐화하는 것 같다. 편견에 불과할 것이지만, 최근 신축한 곳을 지나다 보면 어쩐지 근엄한 것 같다. 비싸고 차가운 대리석을 벽면에 붙여 마감질해 놓은 탓도 있겠지만, 괜히 냉엄해 보이는 것이다.


3. 그 공간 속으로 사람이 빨려 들어갔다고 해서 건물처럼 인성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따지면, 사람 마음이 그런 축조물을 두고 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형식은 내용을 억제한다. 한 번 진입하려면 각종 통과 의례를 거쳐야 하는 곳은 곳곳에 거리를 늘린다. 그 건널목마다에 사람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뒤따른다. 잠재적인 것이 곳곳의 차단 설비로 검열받는다. 겨우 혐의를 벗어나도, "문 앞에 놓고 가세요"하는 최종 승인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매일이 위험이니 불가피한 상황임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차라리 조선시대처럼 문을 열어놓고 살면 어떨까?
정말 조선시대 사고방식이고, 어이가 없는 발상이다. 그런 세상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대부분이 가난해서 잃을 것도 없어, 문을 열어 놓아도 별 염려할 일이 없으면 몰라도, 지금은 가당치도 않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이웃에 부자가 될 수 있고 그 반대는 인색해진다. 그걸 누가 모르겠느냐마는, 그럴 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하다.
'딩동!
"어머 어쩐 일이세요!"
"애들이랑 주말에 텃밭에 가서 가져온 상추인데 보들보들해서..."
그래도 우리어게서는 이런 자그만 목소리가 남아 있다.
편함이 아니라 아직은 마음이 높아서 그럭저럭 살 만 한 데..
다 떠나도 아직 마음은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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