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물신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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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물신을 아십니까?

by canmakeit62 2024. 4. 23.

1. 마스크 쓰기가 신화라고?

마스크 쓰기가 일상화된 현상이다. 서울에 사는 딸내미는 코로나 시국이 진입하기도 전에 그것을 생활화하고 있었다. 황사 워낙 심하니, 이미 마스크가 생필품이 되었던 터였다. 딸내미는 지방에 떨어져 살고 있는 내게도 봄철엔 황사나 송홧가루가 비산해 호흡기에 좋지 않으니 그것을 시행하도록 권유했더랬다. 그럴 때마다, 여기는 괜찮다면서 묵살했더랬다. 지금은 실질적으로 팬데믹이 종료되었지만, 요즘은 나도 밖을 나서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다중이 몰리는 실내에서는 그것을 착용한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원시대에 사냥터로 나서는 데에는, 고작 도구로서의 활이나 창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것을 분실할 경우에는 자기 방어에 치명적 사태를 초래했겠지만, 맨 손으로 대항하거나 열매 채집으로 대체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현대적 사냥터는, 안정적으로 확보되는 대신에 꾸려야 할 사냥 도구가 참 많다. 가방, 휴대폰, 간 밤에 정리한 발표 자료를 담은 노트북이나 아이패드, 비가 오는 날의 우산이나 차양용 양산, 거기에다가 이젠 일상화된 마스크......

 

2. 신화는 역사의 출발점

인간역사는 신화를 밑바탕에 깔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나라 역사서를 보더라도, 거기엔 각 민족의 고유 건국 신화로부터 역사 기술이 시작된다. 모두가 출발점을 신성시하다 보니, 하늘이나 땅, 용맹한 동물 등에서 유래를 설정한다. 그래서 인간은 그것을 미신적 요소라고 규정하고는, 아무리 그것에서 벗어나려 해도 그러지는 못하는 것이다. 각종 제전이나 의식, 공동체 연대를 향한 집단 스포츠 할 것 없이, 사실상 잊힌 신화를 재현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한곳에 집중되어 있는 휴대폰만 하더라도, 지식의 총체, 스마트한 삶을 겨냥한 것이지만, 그것의 본모습은 사냥터로 향하는 보다 진보한 활이나 창에 다름없다. 우리가 신화를 지우면 지울수록, 그것은 더 많은 변형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신을 극복하고자 하는 무수한 노력이 소용없을 뿐 아니라, 사실은 그것을 더 부추기는 것이다. 인간은 신화를 일견 거부하면서도, 스스로 신이 되어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3. 물신화 경계

인간은 성역을 없애는 대신, 거꾸로 자신을 신성시한다. 

물신화!

현대적 삶은 물신으로 가득하다. 각종 소비재에서부터 화폐, 상징적 징표로서 몸에 새기는 문신, 자신을 대신하는 이모티콘 등.

세상을 합리적으로 구성하면서도 물신은 넘쳐 난다. 그것이 자연 속에서 어울리며 그에 순응하던 인간을 결별시킴과 동시에, 이번에는 자연을 대체하는 인간 신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신화 속 존재가 인간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또 벌을 가했던 것처럼, 이 물신은 우리를 좋은 삶으로 안내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재앙으로도 작동한다. 그것이 부정적으로 기능할 때면 비로소 실재가 드러나는 것을 본다. 

:오, 신이시여! 어찌 우리들에게 이런 가혹한 시련을 내리시나이까?"

결국 인간은 신성화되거나, 그를 극복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 속에 갇혀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가끔씩은 신화가 우리 발 아래 꿈틀거리고 있음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쌀알을 던지고 작두를 타는 이상야릇한 신비주의는 아니고 말이다. 어떤 것이든 한계는 있는 것이고 보면, 인간의 오만함, 물신화로 모든 걸 덮으려는 무모함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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