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명 없는 것이 생명의 언어를 묻다.
길을 지나다 문득 전통 공예 기법으로 제작한 조그만 작품 전시회장으로 눈길이 끌렸다. '살아있는 문화재, 오늘에서 내일로'라는 부제와 함께, 무형 문화재 장인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문화재는 사람을 가리키는 무형 문화재, 천연기념물 등의 생존 주체를 일컫는 경우도 있으나 주로 숨을 쉬지 않는 무생물이 그 종류를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장인의 정신, 영혼이 그 속에서 호흡하고 있는 것이므로 사실상 생명 없는 것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생명 없는 것에 에너지를 기입하는 순간, 발길에 걷어 차이거나 물살에 실려 이리저리 떠도는 사물이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그 이전에는, 생명체를 감싸고 있던 것이 조개껍질이며 베어져 갖다 붙여진 나무, 세월에 따라 썩은 흙, 수천만 년을 짓눌렸던 쇳조각이며 돌덩어리인 것이다. 우리가 무생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은 그 기원이 지금과 같지 않다. 그것들은 '그것'이라 지칭될 뿐, '사물의 언어'를 갖고 있던 존재들이다. 현재는 사물과 언어가 하나같이 동일한 시간을 지나 언어가 죽고 사체 같은 글자만 남아있을 때 그 잔해를 '현재'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 사물을 직면할 때면 우리는 그들이 소통하는 '언어'와는 다른 '말'로 소통을 시도한다. 수천만 년 전에 걸쳐 활동을 중지한 세포 속에, 경결 된 암석 구조속에, 석회화한 껍질의 주름에 새겨진 사물의 언어와는 다르게 말이다.
2. 현재는 사물과 우리의 시간을 합치시키는 시도.
그것을 현재에 불러내 현재화하는 것이 공예라면, 그 사물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참으로 도발적이다. 그래서 미지의 미래로 번역을 떠 넘긴다면, 그것은 온당하다. 그리고 정신적 산물로서의 문화재가 되어 오늘에 살아있다고 말하는 것도 일견 타당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들을 탁월하게 제작하는 장인들을 무형 문화재로 언칭한다. 사물과 사람의 언어가 정오의 시침, 분침, 초침을 일치시키고자 하는 하나의 복원 움직임일까?
그들의 시간과 우리들의 그것을 일치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간이라는 선험이 우리 이전에 이미 주어진 대신에, 우리가 말을 걸 때 언어는 침묵하고 건너편에 서거나 앉아 있을 뿐이다. 사람이 설치한 좌대나 무대는 이미 바닥으로부터 말없는 장소로 바뀔 것이다. 말하자면, '말'이 없다는 것은 고요한 정적으로 사물을 대하라는 것이 아니라, 잊힌 언어를 불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의 눈과 입과 손으로 소환된 사물의 언어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귀와 소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예술가들이나 철학자들, 문학가의 언어는 이런 잊힌 언어를 현재에 불러오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난해한 생각을 표현하는 존재들이라 그러기보다는, 언어와 말의 단층이 그 빛깔과 무늬, 울퉁불퉁하며 매끈한 질감을 달리하는 분리된 지층과 같다.
3. 말의 한계, 언어의 경계는 광기와 닮았다.
이제 보면, 전복 껍데기나 진주알처럼 바다의 언어는 동그랗고도 주름으로, 흙의 언어는 갈색 나이테, 돌은 견고하지만 계곡의 '돌돌'거림을 안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의 주름을 편다. 둥근 것을 납작하게 만든다. 긴 것을 짧게 나눈다. 그러고도 모자라 문자를 덧붙인다. 언어와 말은 굽이친다. 모래알이라는 불순물을 밀어내는 고통의 결과는 진주라는 보석으로, 물결의 윤슬이나 파도는 조개껍질의 주름으로 닮아 간다. 그러니 아름다움이란 단순히 말만 캐내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거기서 무얼 발견해 낸다는 것은 우연이 스쳐 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우연적 필연성을 향한 몸부림이 채울 것은 그저 공간에 떠돈다. 말의 한계를 넘어 언어는 결코 채울 수 없듯이, 언어의 경계에 도달하려는 시도는 광기로 이끈다. 수많은 예술가가 광기를 가졌다거나, 광인이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문득 점잖게 앉아 있는 이 사물들이 살아있는 언어로 무엇을 말하려는 지 이제야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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