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잃어버렸다. 뭐 금전적으로야 그리 큰 게 아니지만, 내 손아귀에서 떠나버렸다. 그것을 주운 사람에겐 혹 소용이 되거나 새로운 계기가 될 수는 있을까?
내 것임을 배타적으로 선언하였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다. 처음부터 소유는 이미 다른 사람과의 최종 보유를 유보한 불확실성에 놓여 있다는 말일까?
사회적 방법으로야, 등기 등 권리 표창 방식에 의해 직접 점유하지 않더라도 그것의 온전한 확보를 보장하는 제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서구 몇 나라에서는 이 마저도 주장할 수 없는 어이없는 관행이 있다. 몇 년간 주택을 사용하지 않고 방치해 뒀을 때는 이를 무단 점유한 거주자에게 퇴거를 요구할 궈리를 배제하는 것이다. 우리 법상의 시효취득 같은 문제가 아니다. 소유권은 전면적으로, 그리고 배타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법리를 뒤엎는 야릇한 현실!
그들의 자세한 사정이야 미루어 짐작해 볼 수밖에 없지만, 얄궂게도 잃어버린 사소한 나의 소유에서, 문득 이런 사태가 오버 랩 된다.
2. 채무를 채권으로 알고 산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제 이름으로 명확히 가지려 애쓴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더 확신하려는 강한 동기에서 비롯될까?
권력, 부, 명예, 지식,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환호하는 무리......
그 외형으로서의 소유 양식은 끝도 없이 열거되는 예시로서의 종류이다. 그것을 더 분류해 상위의 소유가 보다 포괄적인 힘을 행사하는 데 집중한다. 권력자는 돈에 굴복하고, 돈은 권력자에 엎드리는 것이다. 이런 뿌듯함은 사람들을 자기 합리화로 더욱 촉발하고 부추긴다.
'권력이 없어 이런 꼴을 당하다니...'
'돈 때문에 인간 취급도 못받고...'
소유는 타자에 대한 접근 한계와 적대적인 의심을 점잖게 드러내는 것으로 행세한다. 원시. 고대사회에서는 증여를 통해 수증자에게 채무를 지게 하고, 반대급부로서 증여자는 권력을 얻었다는 주장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소유의 상실은 자신의 권력 행사를 줄여버리는 소멸 개념이다. 소유를 버리고 무소유를 지향하라는 말은, 이 세계에서 자신의 무대를 철수하라는 말인가?
3. 사는 게 반사이익은 아니기를...
'반사이익'이란 말이 있다. 타자에게 제공하는 급부가 없음에도 자신은 오히려 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그것을 권리와 같이 법적으로 주장할 수는 없다. 국가 재정 형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코로나 시국처럼 이웃 지자체에서는 지원금을 지급한다고 해서 자신이 소속된 지역에서도 동일 정책을 추진하라고 법적으로 항변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러한 자치단체는 은혜로운 시혜자로서 환호를 받겠지만......
이는 시차로 보면, 결국 그것은 채무로서 소속 주민 부담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소유는 이처럼 채무의 빛깔 나는 외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랜 기원을 벗어나 침묵하는 세계에 의해 자신을 과시할 수 있는 주도적 역할을 감당한다. 그러나, 현실을 사는 우리는 좀처럼 그것을 인식하기 힘들다. 만약 그것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자체가 또 하나의, '개뿔도 없는 것이 아는 척 하기는!', '그래, 평생 그렇게 사세요!' 하는 냉소를 면하기 어렵다.
'짐 진 자, 빚진 자는 모두 내게로 오라!'는 말은 참으로 누구를 향해 외치는 말인지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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