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리는 소통하기 위해 필요하다.
소통은 세상과의 거리를 좁히고자 하는 방편이다. 소통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도 모두 수단이지만, 소통 자체는 양자나 다자간을 매개하는 내용적 수단이란 점에서 기능적 도구에 선행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낡은 비유이지만, 미국에 거주하는 친구에게 직접 방문이나 편지 외에는 안부를 주고받을 방법이 없던 것에 비해, 오늘의 각종 소통 수단은 그것을 훨씬 편리하게 한다. 그것은 시공을 넘어, 상대와의 동시성을 확보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방편으로 '거리'라는 걸 두고 있다. 심리학에서도 관계의 긴밀도에 따라 어느 정도의 이격이 필요한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나와 친구 간을 개인적인 거리로 두고, 그 것은 45-120cm 정도로 본다고 한다. 여기서 조금 더 나와, 나와 일하는 사람들 수준의 사회적 거리는 120-350cm 정도라 한다. 그러니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의 거리는 아무리 적게 봐도 1m 정도는 간격을 두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늘날은 무차별적 거리 좁히기가 침투한다. 좋든 싫든, 이런 현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최소한의 안전하고 편한 공간도 없도록 만든다. 사회적 단절을 우려하는 입장에서는 소통 매체가 훨씬 다양해져 세상 곳곳을 비추도록 희망하겠지만, 정작 내용은 점점 더 희박하게 되고 도구만 잔뜩 늘어나는 형국이다.
2. 그런데 그 거리는 더 멀어진다
소통이 보다 간절하거나, 사람간 교류가 끊어짐을 막아야 한다는 호소와 함께 매개 수단이 흘러넘치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말은 짧아지거나 없어진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현대인의 삶이라, 만나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한층 풍부해지고도 다양할 터임에도 말이다. 상업성 전달 방식이 범람해 쿠폰이나 포인트 적립과 같은 물질적 대가가 없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서 그러는 것일까?
전근대적 방식으로, 특정 기념일을 정해 놓고 강제로 참여하게 하는 관행이 퇴장하는 시대라 그런 걸까?
사회적 거리를 좁히고자 하는 바도, 소통하는 목적에서 벗어나는 지경이다. 무지막지한 소통 도구중에서도, 그나마 전화는 원거리에 있으면서도 직접적 소통에 가장 가까운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웬만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전화를 걸면 수신자가 깜짝 놀라거나 인식되지 않는 번호는 의심을 사게 된다. 문자로 교신해야 그나마 평정심을 유지하는 듯하다.
3. 소리 도구 대신 말이 가까워져야...
우리는 필요에 의해 거리를 두기도, 좁히기도 한다. 그것이 사람과의 관계를 배제하거나 그루핑하기 위한 목적은 결코 아니라고 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진화적 코드가 전해져 내려오는 집단적 방어 장치로 기능해 왔겠지만......
그런데, 소통 수단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그것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사회적 거리 단축은 도구들로 인해 더 요원해진다. 자신을 해할 목적으로 낯선 전화번호로 걸려 오는 전화, 심지어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항도 의심이 증폭해 흘려버리는 사태......
이래저래 안팎에서는 소음이 난무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침묵속에 갇힌다. 말이 감금되고 소리만 떠돈다. 우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말 많은 세상에 말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사는 나라에서 다른 말을 써야 하는, 서로에게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이질적인 언어로 소통하기 위한 정도이면 오히려 낫다. 공통 언어가 사라지는 마당에 도구는 가득하지만, 내용으로서의 소통은 기능을 잃고 점점 침묵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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