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쓰기와 글 읽기의 무한성
조용하게 아무도 없는 시간에 연필을 들고 종이를 펼친다. 글감이 쉬이 몰려오고 몰입이 일어나는 시간!
그런데 그게 아니다. 의도적 글쓰기로 따지면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사건이 도래함을 방해한다. 마치 오래 사용하지 않은 컴퓨터를 오래간만에 가동하는 듯하다. 인터넷 보급 초창기 시절만큼 생각도 한참 꾸물거리며 윤곽을 드러내지 않는다. 모두가 잠든 밤에는 잠을 자는 게 맞는 모양이다. 글거리를 밀쳐내고 잠자리에서나 궁리할 요량이다. 다음날 어느 곳으로 발길을 옮기던 순간, 길바닥이며 나뭇잎,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상상과 이야기가 내 곁으로 다가와 웅성거리는 것이 아닌가!
어지러운 행보에서는 글도 마구 날아가버릴 것 같은 데, 그게 아니다. 글을 읽거나 쓴다는 것이 피상적으로는 고요히 앉은 상태에서나 마주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몸이 흔들리고 발바닥이 지면과 접촉할 때 많은 사유가 교차한다. 정지 상태보다는 움직임에서 동질감을 형성하는 것 같은 순간이다.
2. 글을 읽고 쓰는 것은 여백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공백에다가 중얼거리는 혓바닥을 갖다 댄다. 말장난 같은 이 우연성은, 글을 읽고 쓰는 경우에도 유사성이 접목한다. 지면(地面)에서 상승한 지면(紙面), 지면과 같은 높이로 눈과 손을 맞이하는 글쓰기와 글 읽기!
그러나 글쓰기와 글 읽기 자체로 끝나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동작 외에는 그 어떤 것에서도 의미를 찾기는 힘들다. 글을 쓰는 사람은 행간을 남기고 여백을 둔다, 글 속에서도 '......'와 같은 기호를 사용해 독자를 제2의 글 쓰고 읽는 이로 인도한다. 글을 쓰는 이는 그것을 통해 문자 이외의 실재를 남기고, 글을 읽는 사람은 이를 통해 전혀 다른 언어를 읽는다. 심지어는 정서. 정독이 아니라, 잘못 쓰는 오기, 잘못 읽는 오독을 통해 제대로 쓰고 진정으로 읽는다. 그리보면, 글이란 제 머릿속 상상에 불과한 것을 넘어, 사물 전체에 묻어 있는 향기. 자취. 정동 따위를 건져 올리는 것이다.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글을 쓰고 그것을 읽는 제스처를 반복하지만, 결국엔 만물 전체에서 문장과 감성을 길어 올리는 것이다.
3. 글은 타인을 멀리도, 가까이도 하는 역학이다.
그리하여 가까이 있는 상념을 붙들어 매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멀리 있는 존재를 내 앞에 호출하는 것이다. 그 가벼움과 무거움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글은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보다는 오히려 감추는 것일 수도 있다. 재현이 무엇인가를 똑같이 나타내기보다는, 그 유사성을 외현 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진솔하게 쓴다고 하지만, 그 진정성을 읽어낸다고 하지만, 사실은 완전히 그러지는 못한다. 각주. 해석. 주석 따위가 이것을 보충하는 제스처이지만, 그것은 글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이유 외에도, 행간을 읽고 여백을 남기고 타인을 위한 공간이 생성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어떤 여지를 남기지 않고 빼곡한 글쓰기와 읽기는 타자성을 배척하는 것이다. 누군가 읽어 줄 사람을 향해 글을 쓰고, 그로써 타자를 요청하는 것이다. 심지어, 오로지 혼자만 볼 목적으로 쓰는 글도, 결국에는 미래의 자신을 독자로 예비하는 것이다. 누구인가는 바깥에서의 글쓰기와 글 읽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그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보면 일견 이해가 가는 내용이다. 이렇듯 글쓰기와 글 읽기는, 텍스트라는 유한성을 넘어 언제나 우리 앞으로 도래하는 하나의 충격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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