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어는 무의식적이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마주쳤다.
"안녕하십니까?"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죠? 저 번 장인상 때에는 잊지 않고 부조도 다 해주시고..."
이 지인과는 눈을 맞추자 말자 내 마음속에서는, '다른 건 몰라도 그때 고마움의 뜻을 전달해야 한다'는 명령이 제일 먼저 발동되는 것이었다. 언어는 무의식이라 하듯이, 저녁 산책길에 가끔 조우하던 이 사람을 보자마자 무심결에 이런 말이 튀어나오다니!
우리는 1초에 수백만 가지 정보를 받아들인다고 한다. 물론 그것이 모두 소위 말하는 정보가 되는 것은 아니고, 그중 의식하는 것이나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들만 짧은 기억 속으로 편입될 것이다.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들어오는 것은 파편화되어 뒤엉켜 있다. 의식아래, 또는 그것과 함께 묻어 들어온 것은 꿈을 꾸는 것처럼, 의식이 무장해제될 때 상징적 모습으로 뒤죽박죽 나타난다. 신비주의적 사유로, 무엇의 계시처럼 여기는 것은 우습기는 하다. 그런데도 예지몽이니 하는 것이 있고, 그것이 우연히 들어맞을 때가 있음은 참 신기하기는 하다.
2. 신비와 언어
무언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잔뜩 꼬여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이처럼 신비주의에 의존하기도 한다.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 지, 하는 일은 전망을 찾을 것인 지, 지원한 일은 성사될 것인 지 등.
집단 무의식에 들어서 있는 신화의 세계는 중단 없이 그대로이다. 탈신화화를 주창하던 근대의식도 따지고 보면, 인간 중심의 또 다른 신화가 아닌가?
그것을 의식적으로 벗어나려는 몸부림에서는, 실은 그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모든 이들을 안락하게,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하겠다는 유토피아적 발상도 다름 아닌 신화의 찌꺼기일 것이다. 하지만, 울는 세상사를 우연적 작동에만 맡길 수는 없으니, 탈주술화를 내걸고 객관세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신의 영역을 줄여가면서 말이다. 실로 베일에 쌓였던 많은 것들이 우리 앞에 지각할 수 있는, 또는 상상할 수 있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런 측면으로 꿰뚫고 들어가니, 인간은 점점 왜소해진다. 수많은 유전자로 구성된 젤라틴 덩어리, 전기 스파크로 생각하는 기능을 연결하는 감응 장치...
기계론적 우주관에서야 세상 일을 이렇게 설명할 수야 있겠지만, 보잘것없는 인간이 저지르는 자기반성에 비추어서는 너무 냉소적이다.
3. 무의식과 신화는 귀환한다
그래서 신화는, 털어내면 그럴수록 끝없이 되돌아온다. 천년 왕국의 이상도, 공상적 유토피아도 다 그렇다. 심지어, 그것은 이탈과 회귀를 동시화한다. 신이 되고 싶은 야망은 가장 진보했다고 여기는 AI 같은 기계 덩어리에 의존한다. 젤라틴 덩어리가, 제법 있어 보이는 기계적 명령어와 달라 보이는 것은 별로 없다. 그저 시각적 미를 다듬은 것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모순적인 이야기이지만, 인간은 신화가 없으면 존재하기 힘들다. 그 신화를 깨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는 자체가 이미 신화인 것이며, 그것을 부추긴 것도 바로 신화이다. 무의식은 잠재되어 있다. 길에서 만난 지인에게 혹 그 말을 못 하고 돌아섰다 하더라도, '앗! 그 말을 깜빡 잊었구나!' 하는 반성을 내뱉는다. 신화와 무의식이 어떤 연관성이 있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의식하지 않음에도, 불쑥 나타나 그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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