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잘 안들려요, 말로 하세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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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잘 안들려요, 말로 하세요(2)

by canmakeit62 2024. 4. 14.

1. 사람에겐 소리이지만 그들에겐 언어입니다.

햇살이 따갑다. 작열하는 햇빛 아래로 벌들이 꿀을 채집하느라 분주하게 꽃송이를 옮겨 다니며 웅웅거린다. 뜨거운 열기를 고스란히 받아내는 차양 아크릴 지붕은 몸을 비틀며 균열하듯이 '뜨덕' 소리를 낸다.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아, 더워!"

행인들의 입에서는 이런 푸념이라도 터지지만, 사물들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온 몸으로 흡수하는 뜨거움이야 이미 행인들의 기피 대상이 될 뿐, 그늘을 찾는 이외엔 환영받지 못한다. 이 즐거운 날의 성찬을 탐닉해 바삐 하루를 엮어 가는 것들도 많기는 하지만...

벌들이 무수히 '붕붕'거리며 날개짓을 해대는 것은 분명 꿀을 제공하는 꽃들에 대한 감사의 메시지이리라!

꽃들은 암술을 밝게 내밀어 이들을 맞이 한다. 서로의 언어는 무한하고도 은밀하게 교환된다. 

"쨍, 활짝, 웽웽'......

그것을 사람의 말로 번역해 내고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세계의 공용어를 만드는 셈이다. 그런데, 자연의 언어는 그렇게 정밀하지는 않다. 인간을 기준으로 보면, 기껏해야 목에서 울부짖는 소리, '해가 두둥하고 떠올랐다.'와 같은 의태어일 뿐이다. 몸이 아파서 신음하는 모습을 '에구에구 골골골!'하고 소리로 표현하더라도, 이는 상대에게 엄살 부리는 우스갯소리인 것이다.

 

2. 소통을 하기나 하려는 건지?

인간은 그 복잡성으로 사회적 삶을 꾸려나가서 그런 것일까?

조그만 개미. 벌. 동물들, 심지어 식물들이 서로에게 말을 건넬 땐 가벼운 날갯짓. 춤 같은 동작. 원시적 운율을 갖춘 소리에 의한다. 제한적 소통 수단에 불과한 만큼, 자신과 그 무리들을 보호하는 데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잘 어울린다. 하지만 인간은 복잡한 언어 체계, 합리적이라는 각종 제도, 고도로 심오한 예술 언어와 같은 대단한 수단을 가지면서도 잘 소통하지는 못한다. 인간은 동물들의 잔인성에 치를 떨면서도 그 보다 더 혐오스러운 죄악을 저지른다. 서로의 공통어 마저 없어, 외국인은 물론이고 공동체 내에서도 통역이 필요한 지경이다. 

"나는 네가 하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와 같은 현상은 늘 반복되는 것이다.

 

3. 공용어는 간단합니다

그저 가벼운 떨림, 진동으로도 주파수가 동조되면 대형 교량, 하늘을 찌르는 고층 건물도 붕괴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물리적 현상이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집단이 안전하기 위해 부조화의 소통을 남겨 두어야 한다. 같은 말, 유사한 행동, 비슷한 소리들이 울릴 땐, 오히려 그들의 공동체가 무너질 것이 아닌가!

그래서 공동체는 언제나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항상 도래만을 염원하는 존재로서만 남을 것이 아닌가?

그래서 세계는 복잡계로 구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풀어내고자 하는, 무용해 보이는 에너지 낭비는 사실 따지고 보면 소모가 아닌, 보존인지도 모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은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 흡수에 여지를 남긴다. 어무리 좋은 영양제라 하더라도, 그것은 성분의 몇%만을 흡수할 뿐, 나머지는 잔여로서 몸 밖으로 배출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에너지 획득은 그렇다. 여기엔 공존의 규약이 공용어로서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소통은 그런 것이 아닐까?

애써 복잡한 언어와 제스처, 의도와 계산을 넣지 않더라도, 퍼득거리는 날갯짓, 바위를 부딪히는 찰싹임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지진이 일어날 것을 훨씬 일찍 감지하는 동물에게 우리는 그런 언어를 놓치고 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