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모릅니다
책장의 책을 보면 한 번 본 흔적은 있지만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어떤 종류이든 저자는 대단한 노력 끝에 세상에 자신의 저술을 내놓은 것이니, 아무리 쉬운 글이라도 많은 부분을 이해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심지어는, 자기가 써 놓은 글을 읽어도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바에야...
한 때는 책의 전쳬 맥락을 알 수 없어 무엇을 읽고,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라, 줄거리를 요약하는 작업도 해 봤다. 그러나 대략 비슷하게 이해한 듯한 역자 후기 따위와 대조해 보면, 정말 관계없는 이해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저자가 처한 환경, 분류 돠는 범주, 배경 지식 등을 갖고 대하라 하지만, 그것은 이면으로 그것에 선입견을 가지는 부작용이 있다. 말하자면, 전체 맥락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스스로 읽기가 되지 않을 뿐더러, 마치 서문이나 후기 만으로 전체를 다 읽은 듯하기 쉽다. 그러니 책 한 권을 붙잡아 봐야 그냥 눈이 머물렀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수록 좌절감만 쌓이고 몇 장 읽지 못하고 밀쳐 내는 일이 많았다. 또 이해하기 쉬운 책은 술술 잘 넘어가기는 해도 남는 게 없다. 마치 심야에 사방이 조용한 가운데 독서를 하면, 몰입도는 무척 높지만 잠시 멈추면 '뭐지?'라고 반문하는 것처럼.
2. 줄거리는 생략하고
이 적막한 밤에 책을 대하는 일에도 백색 소음은 필요하다. 영어 공부를 하려면 조용한 곳에서 집중할 필요는 없다. 눈 앞에서는 TV를 보면서, 옆에 회화 유튜브를 켜놓는 게 차라리 낫다. 대화자보다는 옆에서 떠드는 사람의 잡음이 더 잘 들리듯이, 우리는 시선이 향하는 것보다는, 엿들리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진다. 올바른 정보보다는, 가십거리가 더 흥미롭듯이 말이다. 어떤 이는 이런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책이란, 손에 쥐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하는 것은 이니고, 한 줄 만 읽고는 밀쳐버라는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수 만 페이지 분량의 글도, 내가 주목하는 것은 얼마나 될까?
이젠 줄거리를 파악하는 일은 삼가고 있다. 그것이 별 의미가 없다고 보였기 때문이며, 가능하지도 않았다.
3. 생각을 횡단하기
대신에 뜻은 다르지만, 횡단 읽기를 적용하고 있다. 줄거리는 내다 두고, 이 책의 몇 페이지를 읽으면, 저 책의 몇 부분을 읽는 것이다. 읽는 간격이 길어 매번 지나온 페이지와 연결이 끊기지만, 현재 대하는 면이 처음이라 여기면 관계없다. 뭐라 했든가가 의문이면, 잠깐 앞 페이지가 참고이며 주석이 되는 식이다. 그래서 요즘은 저자의 전체 맥락을 잘 모른다. 다만 동시적으로 서로 다른 사상들을 접촉하므로, 생각을 옮기기 좋다.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압박도 없으니, 항상 펼치는 곳이 첫 페이지이다. 그래서 버림받고 책장에만 꽂혀 있던 책들이 사면을 받았다. 지젝같은 철학자는 헤겔의 어깨 위에 올라 칸트를 보고, 칸트의 등 위에서 프로이트를 보고 하는 식이 이니었던가?
그런 대단한 흉내는 낼 수 없지만, 소크라테스에서 내려와 현대철학을 만나는 종적 사고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의 경우에도 그런 방식으로 전복적 사고를 일궈내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세로가 아니면 가로 읽기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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