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티스토리챌린지' 태그의 글 목록 (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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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챌린지21

아버지의 언덕 1. 어디로 투족할 지 미정. 늦은 아침이 승차하는 버스. 수소 차 2002번! 검은 매연 내뿜던 산업시대, 이제 20하고도 1세기는 청정의 시대이다. 그런 기표와 갓 취임한 단체장 허 씨. 청렴한 시정 철학 내걸고는, 내내 평행할 노선인 듯 흠흠 헛기침. 아무렴 어때! 요금 단말기엔 신용카드가 페티시. 몇 푼의 압류와 ‘삑’소리의 기계음, 겸연한 공간의 시선을 내어 준다. 뒤편 한 곳 간신히 구긴 몸. 목적지는 없지만, 길게 목 뺀 이정표. 상념에 잠겨 들 때쯤 나이 든 아줌씨들, 간밤 넋두리에 공기는 파열. 정거장마다 웃음이 정차하고, 소리통은 팝송을 응얼거린다. “다음은 인천 xxx 동의 zzz님 신청곡, ‘2002’singing at the top of both our lungs!”온 폐부로 외친.. 2024. 11. 17.
추억을 달리는 길 서기 1900하고도 60년대 말, 동네 아이들이 모여든다. 간밤에 비가 내린 후 땅바닥이 물러, 고철 못을 수집하기 좋다. 동네 노는 형(?) 지휘 아래 코를 처박고는 녹슨 못을 줍는다. “1킬로니까, 10원!땀 흘린 노동의 대가는, 즉각적이지만 불공정하게 분배된다. ”너 1원, 너도 1원, 나는 8원“동네 형이 어딘가로 사라진 후, 우리는 철둑길을 향한다. 얇게 부풀린 뻥튀기 수레가 기다리는 곳. 우리는 그중 크게 보이는 뻥튀기 한 장씩을 집어 든다. 침에 묻으면 녹아내릴 게 뻔한 이 주전부리를, 그래도 또 한 번 부풀려 먹느라 이리저리 혓바닥으로 부피를 늘려 본다. 마주 보는 쪽에 있는 영화관, 혹은 우리가 ‘창고’라고 부르는 곳에서는 3본 동시 상영이 진행되고 있다. 옆 출입구 틈새로 혹 화면이 보.. 2024. 11. 16.
식상함은 그만 Covid-19가 언제 벌어진 일인가?올해를 기준으로 하면 햇수로 벌써 5년 전 일이다.느낌상으로는 불과 엊그제같은 데 말이다. 마치 휴전상태처럼 코로나 종식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바는 없지만, 지금은 그 전염병을 의식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 기간 동안 감금되었던 일상이 많이 자유를 찾았다. 뭐 요즘 TV 보는 사람들이 있느냐마는, 이제 특정 몇 명만 반복해서 출연하는 것에 못지않게 특정 내용만으로 제작되는 느낌이다. 먹는 것 아니면 해외여행이다. 막 코로나가 끝난 시기이면 그렇다 치더라도, 이젠 알게 모르게 제법 지난 때임에도 그렇다. 그것에다가 또 특정인까지 끼어들면정말 지겨워진다. 이젠 TV가 마치 개인 유투브를 방송국 비용으로 제작하는 듯해 보이기까지 한다.드라마를 제작한다고 해도 하구.. 2024. 11. 15.
주름잡힌 이미지 나돌아 다닐 때는 잘 몰랐지만 사정상 집에만 있으니 감금과 고립 같다. 대신에 눈으로 보는 현실 세상보다는 전자적 이미지로 보는 세계가 좁은 손바닥에서 숨 가쁘게 굴러가고 있다. 바깥은 눈에 다 담지도 못하는데 카메라 렌즈는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눈앞으로 가져온다. 사람이 볼 수 있는 한계를기계장치가 훨씬 뛰어 넘으니 당연하기는 하다. 그런데 이미지는 눈을 뜨고 있지만 거의 무신경하게 흐른다. 시선만 향하고 있을 뿐, 어떤 내용을 읊조리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어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집중하려면 비치는 이미지 외에도 머릿속에서는 흘러나오는 설명이나 말을 따라 별도의 이미지를 그린다. 이중의 화면이 표춭되고 있는 셈이다.바깥에 나가 직접으로 풍경을 따라갈 때는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일은 별로.. 2024. 11. 14.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 이꽃님 1. 줄거리 작품은 어느 불법 낚시꾼이 저수지에서 해주가 벗어놓은 가지런한 운동화 한 켤레를 발견하고는 자살로 의심해 경찰에 신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해주는 그녀의 의심이 깊어지고 그래서 염증을 느끼는 연인 해록의 요구, 헤어짐을 조건으로 마지막 만남 장소로 그곳을 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해주는 어릴 때부터 비교적 여유있는 가정에서 자랐지만, 바쁜 부모들 탓에 늘 외로움을 느끼며 살았다. 이런 그녀에게 누군가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욕망인 것이다. 그중 학교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해록은 그녀의 모든 것이다. 그래서 해주는 해록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면서 그의 마음에 드는 건 맹목적적으로 이행하는 한편, 자신으로부터 이탈할 관심사가 있으면 거짓, 농간을 부려 해체해 버린다. .. 2024. 11. 13.
고생을 사서(3) 열흘이 지나도 표피종기가 완치되지 않아 다시 병원엘 들렀다. 그렇게 저항하다가 결국 환부를 열어 강제로 압출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공포스럽다. 이 고통을 견뎌내야 하니 끔찍하다.악몽보다 더 힘든 두려움!상상하기도 싫은데 자꾸만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이 떠오른다.뭔 한 번 지나치면 될 일을 이리도 시간만 끌고 결국처치는 원점으로 돌아왔을 뿐인데...속마저 미쓱거린다. 오늘따라 내 앞 대기자들도 많지 않다. 순번을 미룬다고 사정이 더 나아질 것은 없지만...제발 힘들지만 않았으면 하는데 그럴 리는 없다.이럴 땐 감각 없는 무생물이 부럽다. 아니 감각 있는 생물이라도 이럴 땐 회로를 여닫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악!'하고 외마디 지를 순간이 점점 가까워진다.드디어 내 이름이 불리고, 의사와 대면하고 .. 2024. 11. 12.
계절의 편지 계절마다엔 꺼내 쓸 편지가 있었다.누구에게 보낼 곳도 없지만손마디는 가슴을 풀어 하얀 종이 위를 지났다.세월의 지난 흔적이 손 끝으로 내리는 순간,오랜 친구며 엎어져 무릎을 깬 골목이 솟아났다.망각을 깨는 옛 노래가 우연히 들리던 시간.그것은 그냥 지나쳤을 뿐이지 그냥 멈춰 있던 것이었다.30년 전, 40년 전으로 돌아갈 것도 없이,추억 속 친구들은 아무도 늙지 않고, 아무도 거리낄 것이 없다.그 시절만큼의 자식을 둔 지금, 두 배는 지혜롭게 되었을 듯한데,발길은 여전히 갈 길 몰라 우두커니 선그 시절의 골목이다. 가지 끝에 서릴 이슬도,한낮 온기 품은 넓적 바위 위 길고양이도저리 추억을 되새기며 이리저리 자리 잡을까?그들이 지난 기억을 붙잡고 있다.  바람이 지나면서 그들을 일으킨다.피부에 닿는 공기가.. 2024. 11. 11.
사람, 동물, 식물이든 뭐든 간에 생명을 다하면 부패하게 된다. 그 생명활동의 처음과 최후 흔적이라고 하면 버로 흙이 아닐까?심지어 생명 없는 광물조차도 시간이 흘러 결국 흙으로 분해된다. 흙이란 돌덩이로 굳게 뭉쳐지거나 아니면 그것이 흩어진 결과물이 되는 것이다. 땅을 딛고 있는 것은 튼튼하게 지탱하거나, 여러 미세한 조각으로 흩어질 것을 상징하는 듯하다. 흙은 반대편으로는 각종 영양분을 갖추고, 적당한 온도며 습도를 제공해 식물이 자라는 토양을 제공한다. 또 설치류 같은 동물에는 숨을 곳과 살 곳을 건네준다.땅의 기운, '지기'라는 것도 있어 생명들에 기운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땅을 통해 생명은 꿈틀거리는 것이니 흙은 생명의 잠재력으로 작동한다.이처럼 흙은 삶의 출발이자 끝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 2024. 11. 10.
이기심 남이야 죽든 말든'남에게 혜택을 주고 내가 양보해서는 잘되기 어렵다. 뭐 혹시 누군가 신세를 갚는 일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이런 불확실성에 기댈 건 나, 이기심의 체질에 맞지 않는다. 세상이 바뀔 일이 있을거라고?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난민이나 이민자들을 쓰레기라고 하고, 만만한 동맹국에 강짜를 부리니 정작 자신은 흉측한 인물임에도 대통령에 재선되지 않는가?이기적이란건 참 편리하다. 남의 처지 따위란 신경쓰지 않고 내 머릿속 계산에만 충실하면 된다.  '나 하나쯤이야'이기심인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지만,나는 개의치 않는다. 아니,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다.'이런 x같은 이기주의자...'라는 적대감을 심어주는순간, 돈이 되기 때문이다. 나를 비하하며 멸시하는사람들이 많을수록 조회수는 늘어나고.. 2024. 11. 9.
계절의 과잉 가을이다. 가을 하면 온 세상이 붉고도 노란 물결로출렁인다. 습기를 제거한 공기는 사람들 활동에도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살짝 햇살을 쬐면 따뜻하기까지 하다. 가을은 언제나 힘겨운 더위에 지쳐 쓰러질 몸을 다시 일으키는 청량제였다. 누가 부르지 않아도 때가 되면 들판에서, 푸른 하늘에서, 깊은 계곡을 둥둥 떠다니는 낙엽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아닌 것 같다. 여름이 길어진 만큼 가을은 짧아지거나 아예 인식을 하지도 못할 계절이 되어버렸다. 기온이 예전처럼 내려가지 않으니 나무들도 제 항상성 관리에 혼돈을 느끼는 모양이다. 지금쯤이면 추위에 얼굴을 화끈거리거나차갑게 창백해질 시기인 데, 아직도 여름 색깔은 많이 남아 있다. 여름이 끈질겨졌다. 최후까지 멱살을 잡고 놓아주지 않다.. 2024.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