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예103 겉모습이 다는 아니죠! 1. 무얼로 느낍니까? 대상을 지각하는 것은 여러 가지이다. 눈으로 보는 것, 미각을 통한 것, 만지거나 들어 봐서 무게를 짐작하는 것 등. 그런 감각작용을 동원하는 것은 대상이 똑바로 놓여 있는지, 맛이 있는지, 딱딱한 것인 지 등을 느낌과 대조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중 가장 힘든 것 것이 마음으로 인식하는 것일 게다. 질감 같은 것이야 접촉해 보고는 상상했던 것과 어느 정도 근접하느냐를 판단해 보면 되지만, 속으로 지각하려는 것은 주관적인 기준에 의할 뿐이므로 몹시 힘들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사람을 보면, 햇빛이 강해 눈이 부신 정도를 표현하는 것인 지, 아침에 남편과 말다툼을 하고는 집을 나오는 길에 그를 비난하면서 내뱉는 표정인 지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 겉으로는 몹시 무거워 보이는 상자도.. 2024. 4. 20. 감추는 것이 드러내는 것이라고... 1.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 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지친 다리를 좀 쉬게 할 요량으로 공원 벤치를 찾았다. 그런데 누군가 한 사람이 앉아 있다. 자리가 많아 보여도 갑자기 내키지 않는다. 앉을 곳이 많아 보여도 그게 다 빈 곳은 아니구나! 의자 하나하나에도 마치 익명의 이름표가 있는 것 같다. 아주 사적인 전화 통화를 방해받지 않으려거나,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무슨 일을 하려는 외에는, 낯선 사람과의 어색한 거리 외에는 거리낌을 느낄 이유가 없지만, 그렇다. 굳이 경계심을 세우고 거리를 둬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도, 다른 곳을 찾아 옮겨야 할지 쭈뼛거려지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 괜히 옮기면 상대를 적대시해서 그러는 것으로 오인받을지도 모른다는 눈치까지 보게 된다. 거리를 두고 자리를 차지하기.. 2024. 4. 19. 심심해서 불안합니다 1. 뜻대로 될 바에야 어떤 일을 하든 무엇에 직면하든, 결론을 맺기가 참 힘들다. 그것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에 버금갈 정도로 애매하다. 분명 마음속으로는 종결 지점을 예정하고 진행함에도 그러하다. 과정을 밟아, 세상 하는 일이 계획한 데로 결말에 도달하는 경우는 오히려 드문 일이니, 매우 합리적인 일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우연이라는 것이 개입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이것이 궤도를 이탈하는 바람에, 보다 바람직한 맺음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 일은 모두 임의의 결실이란 말인가? 그럴 수도 있다. 농부가 제법 괜찮은 과실을 기대하며 한 해 내내 땀을 쏟아부은 농작물이, 한여름 폭풍우나 이상 기상에 의해 좌절할 정도의 수확 밖에는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가뜩이나 산지 .. 2024. 4. 18. 누군가에게 그늘이 된다는 것 1. 삶이 펼쳐지는 곳의 그늘 우리가 사는 일상은 짙은 그늘로 가리기도 하고 타인의 그것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기도 한다. 쉐도우 복서는 정식 선수의 스파링 파트너 역할을 하면서 링 위에 오르는 꿈을 꾼다. 가진 부류와 그렇지 못한 존재에게는 공존의 그늘이 드리운다. 합법과 불법적 거래는 그림자 경제로 불린다. 이처럼 그림자는 긍정적인 면보다는 어두운 면이 더 부각되어 있다. 그러나 그림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빛이 없이는 생성될 수 없다. 빛과 그림자가 대조되는 게 아니라, 그림자 자체에서 대립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큰 존재에게는 그림자도 커, 햇살을 피하는 이에겐 많은 사람이 모이기도 하고 반대로 빛이 필요한 이에겐 큰 장애가 되기도 한다. 항상 곁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되는 사람에겐 그림자 같은 .. 2024. 4. 17. 영화는 덜 끝났어요! 1. 이런 또 속았네! 영화 같은 걸 보면, 참으로 장대한 파노라마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실제 그 스펙터클을 체험해 보면, 얼마나 그 광대함을 눈으로 포착할 수 있을까? 물론 흔히들 입에 오르내리는 장소나 설치물을 대하면, 이미지로 전달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형상에 적잖이 실망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을 과장해 사람들을 유인하는 경우엔, 그 기대치가 한 번에 땅바닥으로 내려앉는다. "이런, 또 속았네!" 만약 우리가 영상의 바깥을 동시에 접한다면, 이런 태도에 수정이 가해 질 것이다. 가끔씩 영화를 보다가, 나는 그 장면 하나보다는 사람들이 그 순간에 어떤 표정과 반응을 하는지 슬쩍 훑어보는 게 더 재미있는 때도 많았다. 연인들끼리 로맨틱 영화를 보는 경우엔, 의식하지 않는 척하면서도 그. 그녀의 시선을.. 2024. 4. 16. 너무 잘게는 살지 맙시다. 1. 상상에서 만나는 거대 서사 웬 종일 걷고 헤매느라 몸이 피곤한 하루이다. 그래서 감기는 눈꺼풀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 일찍 잠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어찌 된 것인 지 쉽게 잠을 청하질 못하는 것이다. 머릿속 자체가 더 무거워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을 더 힘들게 하기 위해 이런저런 상상을 해댄다. 콜레주 드 프랑스 아시아 학회 도서관에서 최근 발견되었다는 광개토대왕비문 탁본이 불쑥 화면을 채운다. 일본과 중국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전면에 배치된 이 비문. 서기 391년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니, 그 시기에 그 비문의 서사를 쪼아 대 비틀어 버린 것일까? 내 머릿속 상상에서는 광개토대왕께서 왜구를 격멸하고 지금의 일본 땅에 식민으로 삼은 백제, 신라, 가야 유민들을 통한 지배 정책이 꿈의.. 2024. 4. 15. 잘 안들려요, 말로 하세요(2) 1. 사람에겐 소리이지만 그들에겐 언어입니다. 햇살이 따갑다. 작열하는 햇빛 아래로 벌들이 꿀을 채집하느라 분주하게 꽃송이를 옮겨 다니며 웅웅거린다. 뜨거운 열기를 고스란히 받아내는 차양 아크릴 지붕은 몸을 비틀며 균열하듯이 '뜨덕' 소리를 낸다.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아, 더워!" 행인들의 입에서는 이런 푸념이라도 터지지만, 사물들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온 몸으로 흡수하는 뜨거움이야 이미 행인들의 기피 대상이 될 뿐, 그늘을 찾는 이외엔 환영받지 못한다. 이 즐거운 날의 성찬을 탐닉해 바삐 하루를 엮어 가는 것들도 많기는 하지만... 벌들이 무수히 '붕붕'거리며 날개짓을 해대는 것은 분명 꿀을 제공하는 꽃들에 대한 감사의 메시지이리라! 꽃들은 암술을 밝게 내밀어 이.. 2024. 4. 14. 잘 안들려요, 말로 하세요! 1. 거리는 소통하기 위해 필요하다. 소통은 세상과의 거리를 좁히고자 하는 방편이다. 소통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도 모두 수단이지만, 소통 자체는 양자나 다자간을 매개하는 내용적 수단이란 점에서 기능적 도구에 선행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낡은 비유이지만, 미국에 거주하는 친구에게 직접 방문이나 편지 외에는 안부를 주고받을 방법이 없던 것에 비해, 오늘의 각종 소통 수단은 그것을 훨씬 편리하게 한다. 그것은 시공을 넘어, 상대와의 동시성을 확보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방편으로 '거리'라는 걸 두고 있다. 심리학에서도 관계의 긴밀도에 따라 어느 정도의 이격이 필요한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나와 친구 간을 개인적인 거리로 두고, 그 것은 45-120cm 정도로 본다고 .. 2024. 4. 13. 화폐 인문학 간단 살펴보기 -이마무라 히토시 1.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당하고... "저희가 이제 부대이다 보니까, 인원이 한 50명 정도 됩니다. 닭(백숙), 그것만 해주시면 저희가 갖고 이동을 해서..." 그러더니 곧 간부 회식도 있다며 대뜸 3백만 원어치의 과일을 사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군인이라던 사람도, 과수원 주인도 모두 사기꾼이었습니다. [mbc, 4.9]" 온라인 사기 사례와 수법이 수 없이 공표되었지만, 여기저기에서 매번 딱한 이야기가 보도된다. 거기엔 동정심보다는 분노와 적개심이 더 앞선다. 금전적 피해자는 이루 말할 수 있겠느냐마는...... 물적 손해보다는 자괴감과, 타인에 대한 불신을 강화하게 되는 심리적 타격이 훨씬 크다. 그것을 간접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왜 그 사기꾼들이 주로 사회적 약자들을 집중적으로 괴.. 2024. 4. 12. 죽고 사는 것이 무엇이라고요? 1. 두 번의 주연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 순간에 단 두 번, 세상의 주연이 된다. 물론 그중에는, 전체 생을 통해 단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하는 삶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허무주의적 시각을 들이 밀면, 삶을 꾸려가는 중간에 받는 주변의 관심은 단절을 막고자 하는 몸짓에 불과하며 부러지기 쉬운 연약한 것으로 금방 사라지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받는 것으로부터 탄생이 주던 이목과 기대를 연속하고자 하는 제스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 본래적 삶인가?' 하는 것은 여전히 의문스러운 것이지만, 암튼 이 연장선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쉼 없이 상징계에 이미지를 덧붙이는 지난한 움직임을 계속한다. 누구든 죽음이라는 무를 향해 의식적으로 달려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그것은 '허무' 그 자체가 된다. 하.. 2024. 4. 11. 이전 1 ··· 7 8 9 10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