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내면의 옹알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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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치매 드러나 ᄇᆞᆯᄀᆞᆫ ᄃᆞ리 1. 솔직한 시대가 곡조를 감춘다노래가 흘러나온다. 옛날 노래다. 내가 젊은 시절에 듣던 대중가요이다. 저리도 오래된 노래가 아직도 라디오 전파를 타고 방송되다니......그 시간을 거쳐 온 탓인 지, 문득 감성이 과거와 접속한다. 요즘 사람들은 이 노래를 들으면, 속도가 느린 데다가 감정 표현이 오히려 직설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가사는 뚜렷이 들리는 데다가, 심장의 표피를 긁어 댄다. 요즘같이 제 감정을 솔직히 드러낸다는 세대 노래에 비해서는 역설적이다. 작금의 대중가요는 따라가지도 못할 속도와 영어 속어를 뒤섞어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오히려 느낌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음악 자체가 운율을 언어로 하는 것이니, 그 속의 가사야 굳이 전달 요소로 하지 않아도 이미 세계 공.. 2024. 5. 3.
생명 현상은 제조업이 아니다 1. 개나리철쭉이 있나요?벌 한 마리가 머리 주위를 웅웅거린다. 방금 전에 꽃을 희롱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터였다. 꿀을 채집하느라 몸에는 꽃가루를 잔뜩 묻혔을 것이다. 이 벌이 묻힌 화수분이 종류가 다른 꽃 암술에 닿아도 수정이 일어날까?철쭉이 아닌, 호박꽃에 앉아 머리를 쳐박고 또 그 같은 움직임을 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괜한 궁금증이 일지만, 까닭 없는 잡념이다. 벌이 옮기는 생성력은 말없는 식물에게도 정확한 대응으로 나타날 것이다. 만약 그런 교잡이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적으로 가능하다면, 세상의 꽃들은 호박 철쭉, 벚꽃 무궁화, 진달래 붓꽃 같은 길고도 긴 이름을 가지거나, 미리 결정된 명칭을 얻지 못하고 매번 새로 지어지는 타이틀을 가질 것이다. 또는 벌이 꽃과 교미를 해서.. 2024. 5. 2.
사회적 배설, 혐오 1. 분노 조절 애로 사회분노를 조절하기 힘든 삶이다. 세상을 향해 자신의 내면을 토해 내는 것이 일시적 파열을 내는 건 그래도 지나칠 만하다. 하지만, 그것이 누적된 혐오로 증폭될 땐 사태가 중대하다. 폭력을 비난하는 어느 글이 올라오면, 이번엔 왜 소수자에 대해서는 갖은 악의가 동원되면서 다수자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대하냐는 것이다. 이리되면 출발선을 넘겨 성차별이나 인종주의 문제로 비화하고, 그것은 권력이나 기득권 등의 사태로 확산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식으로 비슷한 공감대가 연대를 이루다가, 그 속에서 다시 분열해 작고도 작은 관심사로 흩어진다. 공동체가 일반적인 공통체로 묶일 .. 2024. 5. 1.
'개불쌍'한 자유 1. '개~...' 의문의 1패"개불쌍하네!"이는 개가 불쌍한 게 아니라, 형편이 대단히 딱한 처지에 있다는 뜻이다. 정말 안타까운 상황에 있는 개라면, "개불쌍한 개네!"라고 그 맥락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이미 개는 안타까운 대접을 받는 존재로 쓰이면서도, 그가 주체가 될 경우에는, 마치 접두어처럼 쓰이는 '개~'라는 표현의 악센트를 갖는다. 개는 좋은 수식어보다는 주로 나쁜 뜻으로 활용되는 빈도가 더 많은 듯하다. 사람이 도리를 잊어버리고 엉망이 될 때는, 어김없이 그가 등장한다. '개차반'. '개 같은 x'......비유법으로 사용되지만, 실 내용은 그와 동일하거나 그보다 더 저열한 행위에 붙여지는 것이다. 개가 뭔 잘못을 그렇게 했길래 이런 불편하고 부당한 취급을 받는 것일까?아니 조금 더 뒤집.. 2024. 4. 30.
방해받을 자유 1. 조용한 자유를 찾습니다비가 내리거나 흐린 날이 계속되다가 따가울 정도로 햇살이 좋은 날이라 그럴까?집 주변 공원과 가로수 길이라 이름 붙여진 거리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뜨거운 곳을 피해 그늘 어딘가에 좀 앉으려 했더니, 그럴 만한 곳이 없다. 볕을 피해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벤치 하나를 간신히 확보했다. 근래 들어 사람들이 이렇게 붐비는 건 처음이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니 그래도 몸이 스르르 내려앉는 느낌이다. 앞서 가면서 도자기 굽는 일로 다투던 부부는 이제 말다툼을 그쳤을까?어떤 그릇을 만들고 있는 지, 설전을 벌일 정도로 긴요한 것이었을까?관심 없는 내용이라면 그렇겠지만, 의견이 갈라서는 곳에는 사람 사는 일이 있다. 항상 한 방향이 지시되어 한 곳으로 향하면 바람직하겠지만, 왈가왈부.. 2024. 4. 29.
기억과 기록 1. 잊기 위한 기록기억을 기록하지만 기록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록은 그 목적이, 기억하기보다는 잊기 위한 것이다. '기억하라. 기록하라'는 것은 어느 일방의 목적과 수단이라기보다는, 양자의 방법을 모두 동원하라는 뜻이다.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으니 기록이라는 객관적 보조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지만, 심지어 기록을 보고도 자신의 시간을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어느 한 곳에 처박혀 있는 오래된 사진이나, 글 쓴 노트를 발견하고도, 그 내용을 보면 완전히 낯선 것이라는 걸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누구랑 거길 갔다고?''그떄 나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니!'기억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새로운 내용들이 덧씌워질 때는 무의식 아래층에 묻힐지는 몰라도, 대부분 새로운 입력에 의해 지워진다... 2024. 4. 28.
근본은 다르지 않다 1. 다른 것이 어울린다.세상의 사물은 본질이 있다면 현상은 그것의 발현 내지 재현이다. 돌에 붙은 이끼는, 그 자체의 생성을 드러내는 것이겠지만, 단단한 돌에 달라붙어 그 성상을 나타낸다. 그보다 무른 나무, 아니 그 감각과 훨씬 잘 어울리는 듯한 땅바닥은 그나마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 딱딱한 바위라니?아마도 습기는 이끼 자신이 머금으면 되고, 물이 쉽게 빠지는 곳을 선호한 탓이리라. 그렇게 암석은 감각상의 굳은 질감에서 벗어나, 부드럽고 생기있는 초록을 얹고 있다. 우리가 얼른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 위에 덮여 사는 양치식물이다. 이 말랑말랑한 감촉이 그 대척점에 있는 강도의 사물과 한 몸처럼 얽히다니!본질을 파고 들어가면 이 돌덩이도 낙엽이 썩어 흙이 되고, 세월을 지나 그 위에 쌓인.. 2024. 4. 27.
읽히지 않는 글 1. 벽에다 대고 말하는 건가요?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쓰는 글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모르겠다는 것이다 개인사를 혼자 간직하는 일기처럼 적나라하게 기술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읽는 사람이 어떤 의도와 결론이 따른다는 걸 알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것을 듣는 대로 해석한다면, '그럴 것 같으면 차라리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못 새겨 읽는 것은 네 수준 문제이다. 흔한 이야기를 엮어 봤자 말 그대로 개인적 기록으로 보관하고 말지, 누가 보든 말든 나는 내 생각을 기술할 뿐이다!'사실 생각해 보면, 그들의 지적이 맞다. 글을 통해서 타인과 소통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인 데, 어쩌면 남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나 자신만 알 수.. 2024. 4. 26.
대체 어디 있는 걸까? 1. 찾는 건 가까이에 있어요집 근처에서 춘란 자생지를 발견했다. 난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곳에서는 눈길도 가지 않는 전형적인 푸르죽죽한 일반 개체이지만, 코 앞에 있는 곳에서 그것을 발견하다니!그것에 취미를 가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매번 가슴이 설렜던 그 활동도 이젠 시들해져 중단했지만, 여전히 춘란을 대할 때면 개안하는 기분이다. 동료들을 따라다니기도 하고, 문득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 주변 야트막한 동산이라도 기웃거릴 땐, 그게 그렇게도 눈에 띄지 않더니......지금은 그 존재를 목격하더라도 눈으로 보거나 사진을 찍어 기념하는 외에는 일부러 집으로 옮겨 오지는 않지만...어쨌든, 별로 상상이 안되는 곳에서 뜻밖에 그것을 만나니 반가울 따름이다. 야외 전시장을 하나 마련.. 2024. 4. 25.
용서한다는 것 1. 용서의 역학 용서한다는 것은 지난 과거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비난받을 내용을 모두 삭제해 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지난 일을 다시금 문제 삼지 않는다는 태도이지만, 흔적을 모두 지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일을 행함에는, 상대보다는 실질적 우위에 있는 것이다, 약자가 강자를, 피해자가 가해자를 끌어안는 것은 그 관계 자체에서 보면 파생되지 못하는 역학관계이다. 용서를 통해서 서로가 물리적으로 동등해지는 건 아니다, 권력자는 여전히 권력자이고, 가해자는 계속 그러할 뿐이다. 그들이 처음으로 수평선 상에 놓인다면, 그것은 심리적 지평선뿐이다. 한 번도 같은 선 위에 놓여 보질 못했던 존재간에는, 공감이라는 지평이 열린다.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정말 마음속에서 강한 갈등이 생긴다. 용서받을 자격,.. 2024. 4. 24.